예배와 예물
로마서 12장 1절에서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다. 라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가진 소유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창세기 4장 3절에서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지만, 또 솔로몬이 20년이나 걸려 지은 성전도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받으실 것은 사람에게서 취하지 않고, 스스로 준비를 하시는 분입니다. 창세기 22장 13절에서도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을 취하지 않으시고 수양을 수풀에 뿔을 걸어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또 인간의 죄를 대속하실 때에도 죄인의 피를 받지 않으시고 스스로 아들의 위로 이 땅에 오셔서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는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어놓는 헌금(연보)은 형제, 자매와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마음을 보십니다. 내가 가진 재화나 시간이나 권력을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궁핍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선한 행위 곧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을 셈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나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기 위해서는 거룩한 제물(祭物)이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아무리 씻고 다듬어도 거룩해 지지를 않습니다. 마치 사막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조각목(싯딤나무)처럼 볼품이 없습니다. 나는 못생긴 싯딤나무지만 금이 입혀지면 성전의 건축재료로 쓰이듯이, 나 자신은 점 있고 아롱져 여진 양이지만 야곱의 돌봄으로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갈 수가 있듯이, 나는 여전히 죄성을 가진 죄인이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은혜로 의의 옷을 덧입혀 하늘나라 아버지의 전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금으로 덮힌 싯딤나무라면, 또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라면 그 모습은 구약에서 드려졌던 제물(祭物)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먼저 굽이 갈라져야겠지요. 세상은 높아지려 하지만 나는 낮아져야합니다. 자신을 들어 내려하기 보다 소금처럼 녹아 스며들어 주만 드러나야합니다. 싯딤나무가 금밖으로 나오거나 의의 옷을 헤집고 추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나무는 불태워지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되새김도 해야겠지요. 내려오는 유전이나 관습도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불빛에 비추어 보아서 아닌 것은 버려야합니다. 비둘기 같고 고운가루 같아서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짝을 이루어야합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부족합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습니다. 언제 어느 때 누가 보더라도 예수쟁이구나 하도록 저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