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삶은 나눔이다.
주께로부터 받은 말씀과, 수고하고 얻은 물질을 나누어야한다. 고아와 과부에게는 더 많이 나누어 빈궁한 자의 손이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
나누기 위해서는 언제나 성도와 이웃간에 교제가 있어야만 한다.
교제는 사회성의 문제이기 전에 한 지체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무이다.
나누지 않고 혼자 갖고만 있으면 그대로이나 둘이 나누면 2배가 되고, 열이 나누면 10배가된다.
나에게는 비록 작고 하찮아도 누군가에게는 크고 귀한 것 일수가 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가끔은 너무 중요해서 아까울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는 것으로 변 할 수가 있기에 그 가치가 살아있을 동안에 주어야한다.
노량진모임(Noryangjin Christian Assembly)이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부합하는 분별과 순종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린도전서 14:31]”는 말씀과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8]” 하시는 말씀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한다.
나눔에 방해가 되는 그 무엇도 가차없이 버려야 한다.
그것은 주로 물질의 욕심과 자신의 명예나 허영과 같은 육신적인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언제나 힘없고 어리고 연약하며 주목받지 못하는 자를 사용하여 큰일을 하셨던 사실들을 상기하고 나 보다 어린자의 분별도 주의 깊게 들어야한다.
시간적으로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새로운 분별을 주실 수가 있음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고린도전서 14:30]”
은사적인 측면에서도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로마서 12:4]”하시는 말씀으로 알 수 있듯이 내가 받지 못한 분별을 다른 형제나 자매가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러므로 어린형제의 분별이라 해서 중단하게 하거나 공격하는 행위는 성령을 따라 한다고 할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눈에 보이는 손발도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지체의 구분은 부질없는 것이다.
나누면 더 많아지는 원리가 그리스도의 법칙이다.
나누어 보자.
나와 모임의 부흥을 위해서 주의 말씀을 순종해 보자.
내가 물질을 가졌으면 물질을, 예언을 얻었으면 예언을, 권한을 받았으면 권한을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