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게시판

성숙한 그리스도인 [김형식 2014/03/16]

관리자 0 824 2017.01.27 15:34
우리가 여호와를 하나님이라 부르는 이유는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고, 천지를 지으신 분은 오직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16:26], [시편 96:5] 하늘에 계시다고 해서 하느님으로 부르는 무리도 있습니다만,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분별의 차이입니다. 금요조찬모임에 나온 한 회원의 교회에 담임목사가 감기에 걸리자 할머니 네 분이 다른 교회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할머니들에게 목사는 하나님과 같아서 아프지도 않는 성스러운 존재인가 봅니다. 이를 분별의 차이로 보아야 할까요?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아야 할까요? 보다 나은 분별을 하기 위해서, 복음의 진보를 이루기 위하여 건전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건전한 토론은 상대의 분별을 공격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권면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봉건사회에 길들여진 우리는 나와 다른 의견을 들으면 나를 무시하는 것도 같아 나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하지 않거나, 토론을 중단 시키고 화를 내기도합니다만, 이런 반응은 옳지 않다는 것을 본인 자신도 잘 알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솔직하고 깊숙한 교제를 할 수가 없다면 한 지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편견을 버려야합니다. 500년전 그리스도인들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200년 전 미합중국은 유색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불가능했습니다. 상투의 불편함 속에 살았던 100년 전 대한제국에서는 고종이 단발령을 내렸을 때 온 유림과 사대부들이 통곡을 했습니다. 단발의 유용성은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채로 말이죠. 30년 전 한국의 기독교계에 구원론은 이단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먼저 구원론을 가르칩니다. 이런 편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메달아 못을 박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남의 이야기일까요? 내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나 또한 똑같은 편견장이입니다.
 
내가 나의 자유의지로 되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린도전서 15:10] 로 되었다고 고백하는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다.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다.[예레미야 10:18] 나는 완악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다스리십니다.[사무엘하 7:14]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막대기를 아끼지 않으십니다.[잠언 26:3] 이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나를 이끄십니다.
 
출애굽기 5장에서 애굽의 노예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모세를 따라 나서도록 바로의 마음을 움직여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만들게 함으로 이스라엘을 더욱 괴롭게 합니다. 군에서 유격훈련을 받아 본 사람은 기억합니다. 레펠이나 하강, 외줄타기등 위험하고 힘든 훈련을 하기 전에 반드시 받게 되는 잊지 못할 PT체조(Physical Training)는 몸을 부드럽게 하여 긴장을 풀어 줄 뿐만이 아니라 차라리 죽음에 맞서겠다는 의연한 결심을 하게 할 만큼 용기를 주는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괴롭힘은 생각을 바꾸도록 합니다.
 
민수기 21장에서도 스스로 놋 뱀을 쳐다본 것이 아니라, 불 뱀에 물려서 죽게 되니 놋 뱀을 쳐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간절함이 없으면 무례히 행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바울도 다메섹 길에서 그리스도의 강한 빛을 만나 엎드려 지고서야 주를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 22:6]
 
오래전 아담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생령이 있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영은 죽었습니다. 나는 아담으로부터 죽은 영을 물려받았습니다. 나는 사망이요. 어둠이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육신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 나에게 하나님의 영 곧 성령하나님이 찾아오시어 죽은 내영을 대신했습니다. 이제 나에게는 영생하는 영이 있습니다. 내 안에 육신의 마음과 영의 마음이 있습니다.[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늘 사망입니다. 만약 내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해도 나의 선택은 늘 사망을 택하고, 죽음으로 달려갑니다. 이런 나를 살리신 분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보고는 살자가 없다.[출애굽기 33:20]고 합니다. 하나님은 살리는 분이지 죽이는 분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빛이고, 나는 어둠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둠에 빛이 비치면 어둠은 없어집니다. 어둠이 죽는다는 뜻이죠. 어둠은 죽고 빛으로 삽니다. 그래서 모세를 지나실 때 모세를 반석 틈에 두고 손으로 가리고 지나가심으로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했습니다.[출애굽기 33:22] 이제 하나님이 성령의 위로 내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장차 올 그 날엔 내영과 변화 받은 내 몸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내 글로 인해 마음에 불편함이 있는 분들도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받은 말씀으로 반박하는 글이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 글은 나만의 분별 일 수도 있고, 나와 다른 분별을 하는 성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린도전서 11:19]합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다.[고린도전서 14:31]고 합니다. 또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고린도전서 14:32]고 합니다. 권면이든 충고든 주안에서 사랑으로 주시는 말씀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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