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성도를 위해 준비되는 영원한 그 나라-차갑술(성도교제) [2014/09/14]

관리자 0 714 2017.01.29 08:47
2014.9.14
 

 

성도를 위해 준비되는 영원한 그 나라
 

차갑술
 
고향을 방문하신 사랑스러운 성도님들이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과 좋은 교제가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주님께 만족스럽고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예배,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 주님께서도 기쁨으로 열납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은 "만족"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저마다 만족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우리에게 만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보고자 합니다.
 [고린도후서 35]
우리 사람이 태어날 때는 내가 울면서 태어납니다. 만약 울지 않는 아이는 죽을 수가 있어서 자극을 주어서라도 울리도록 합니다. 이 처럼 우리의 삶의 시작은 눈물로 시작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삶의 끝나는 시간에는 죽은 내가 아닌, 나의 죽음으로써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 처럼 삶은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나는 것이 인생살이다. 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마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차피 이 세상에서의 삶 속에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만족을 추구하고 그 것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만족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만족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는 이유는 요즘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어지럽게 하고 있는 "유병언"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조금 압니다. 전에 제가 방송국에서 전도를 할 때 국장까지 된 사람이 유병언이고, 제 고향인 무의도 에도 방문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제가 그 사람들하고 교제가 끊어 진 것은, 그 사람들은 일단 구원을 받았으니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 보자라고 하며 더 이상 무릎 꿇고 기도할 필요도 없다고 할 정도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70년도에 그 사람들과 교제를 끝내고 나온 뒤로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근래에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가 있었는가?
참으로 희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신앙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람인 줄 알았었는데, 어찌하여 하늘의 소망이 아닌, 이 땅 위의 부를 따라서 그 아까운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에 원인 제공을 한 장본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마지막은 처참하게 끝이 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길인가 참으로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있긴 한 것인가 생각을 하면서 우리 모임의 여러 연로하신 노형제, 자매님들께서 아무런 아픔 없이 잠을 자듯이 참으로 멋지게 왔다가 멋지게 가는 것을 보고 이것이야 말로 죽음의 만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주님께 저토록 고통 없이 갈 수 있도록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만족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만족은 붙잡힐 듯 붙잡히지 않고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만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216]
유병언을 보며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엄청난 수천억에 달하는 재산을 모았지만, 우리의 삶이 끝났을 때에 이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 되겠느냐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만족은 하나님께서 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이 땅 위의 만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이후에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가 있어야 하지만, 엉뚱한 길에 자신의 삶을 경건하게 하지 못 할 때에 하나님으로 부터 심한 징계가 있음을 마음에 기억하시고, 우리는 참으로 주님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삶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삶일까요?
 [시편 1715]
내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 되었을 때에,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 된 내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만족할 것이다. 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어디에서도 만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 320, 21]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제가 어느 사람에게서 세 번 감탄하는 시간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감탄, 그리고 구도자들이 주님의 피로써 구원을 받았을 때 주님의 감탄,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태와 같이 변화 되었을 때의 감탄입니다.
  요즘 종종 사진 속의 제 모습을 보면서 실망 할 때가 있는데,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 될 모습을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초리에 관여 받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51절에서는 우리가 눈 깜짝 할 사이에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엉뚱한 이곳에 소망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을 만날 소망을 가지고 경건한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시편 654]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까지 허름한 집과 예배당을 거쳐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상당히 넓은 40여 평의 아파트였습니다만, 이를 보고 자녀들은 "천국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거처는 수천년 동안의 시간에 거처 만들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고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선물로 거저 주신 것 입니다.
 [요한계시록 2116]
위 말씀에서는 우리의 거처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가장 아름다운 수많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와 넓이가 2,200km 길이에 다다르는 어마어마한 집입니다. 이러한 집을 소망할 때, 이만하면 우리가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집을 소망할 때에 우리의 삶도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엉뚱한 곳에 소망을 두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그 축복에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시편 9116]
우리가 100만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1028]
어떠한 유혹이 오더라도 확실히 우리 마음에 가져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나를 붙들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주님입니다. 언젠가 끝이 오는 100만년의 삶이 아닌 영원한 삶을 우리는 보장받고 살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가지고 우리는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피로써 사신 생명이기에 빨리 불러 가실 수 있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하늘나라의 보상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음을 마음에 두시길 바랍니다.
  거듭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삶을 보장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에 맞게 이 세상의 만족을 버리고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 받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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