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몬1:7) 조현호 [2016/01/24]

관리자 0 595 2017.01.29 10:49

작년 한 해를 돌아볼 때 우리 교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우리보다 높기에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을 보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했던 결과가 감옥행으로 되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행하는데도 블레셋과 주변 지역의 공격을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게도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실히 알고 있지만, 그 길을 통과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인 것입니다. 또한, 사단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며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사단의 궤계에 대적하며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8:17) 우리는 세상으로 위로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몸으로 채우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평안은 세상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통해 평안을 얻고 주님의 빛을 비추는 성도들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평안을 느낄수 있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의 주제인 빌레몬서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을 통해 평안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4절에서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빌레몬의 사랑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랑은 5절에 있는 대로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내가 가진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뿌리가 되어 나오는 열매로서의 사랑입니다. 빌레몬의 이사랑으로 성도들의 마음이 새 힘을 얻고 충전을 받았던 것입니다.

1. 빌레몬서 요약

빌레몬은 자기 집에서 모이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오랜 기간 친분을 나누고 있는 동역자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빌레몬 집에 있던 종인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돈을 훔쳐 도망치던 중 멀리 로마에서 감옥에 수감 중이던 바울을 만나 구원을 받고 새사람이 되어 바울의 복음 사역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 오네시모가 바울의 친구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노예라는 것을 알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빌레몬에게 주인의 권한으로 죽일 수도 있는 노예인 오네시모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입니다. 이 짧은 서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사랑의 표현 (바울의 권면을 통해 나타난 사랑) 8~14

첫째로 사도권으로 하지 않고 섬김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해준 영적 아비와 같은 사람이기에 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관계라고 쉽게 요구하거나 가볍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가 따라올 것을 원하셨던 사랑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낮아지신 것입니다. 둘째로는 선한 일이 자원함으로 준비될 여유를 두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선한 일이 억지로가 아닌 자의로 되게 하기 위해 빌레몬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가 진정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배려하는 사랑의 동기로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이 서로 용서를 구하고 실제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를 하고 사랑받는 형제로 지낼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무익했던 종이었고 죄를 범한 죄수였던 오네시모와 같은 우리를 품어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이 바울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 가운데 나타날 때 세상이 환난을 가지고 다가와도 우리는 성도의 사랑으로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3. 사랑의 대상(하나님의 주권) 15~16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일하시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만나고 복음이 전해진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주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노량진 교회의 한몸 된 지체로 섬기고 있는 것은 어쩌다 우연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서 함께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을 나타내야 할 대상은 누구여야 할까요?

1) 현재 함께하시는 성도님 - 주님께서 내 곁에 두신 지체들입니다. 나와 마음이 맞는 성도뿐 아니라 나와 생각이 약간 다른 성도일지라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그렇습니다.

2) 모임생활 못하고 있는 성도들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사랑으로

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때로는 성도들이 만나기 싫다고 할지라도 기억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신동민부부, 차경훈부부. 차경식형제 김주헌부부 등)

3) 구도자분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 살아있는 믿음을 통해 나타난 사랑을 삶으로 나타냄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사랑과 믿음을 보실 수 있도록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4) 지역 특성전도 - 공부를 위해 이곳에 온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영, 육간에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학원생들 -전도지를 통해서라도, 우리의 생각이 주님을 앞서지 말고 기도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주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4. 사랑의 수고 17~19

(살전 1:3) 참된 믿음에는 행함이 나타나고 소망에는 인애가 필요하고 사랑에는 자기희생의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과 수고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나와 같은 형제로 영접하라고 간청을 하면서 그가 불의한 것 네게 손해를 입힌 것은 내가 친히 다 갚겠다고 친필 서명까지 하면서 실제적인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시고 사랑을 주시기까지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과거에 현재, 미래에 질 빚까지도 다 갚았다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9:30).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접대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13:1~2) 손님을 접대하다가 천사로 나타나신 우리 주님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으로 넘쳐 계속해서 형제 사랑을 지속하고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베풀어지다 보면 부지중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께 한 것이 되고 주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올 한해 세상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리의 평안을 빼앗고 낙심케 하려고 하지만 우리 가운데 용서가 있고 나눔이 있고 섬김으로 주님이 보이신 사랑을 실제로 모든 성도들이 나타냄으로 우리 각자에게 성도들의 마음이 나로 새 힘을 얻고 충전이 되며 나의 사랑으로 동일한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참된 위로가 되며 우리 주님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는 노량진 형제 자매님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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