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저와 함께 하시는 주님-황웅재(성도말씀) [2013/02/13]

관리자 0 1,283 2017.01.28 06:36

 

2013. 2. 3
 
 
 
 
저와 함께 하시는 주님
황웅재
 
 
노량진모임으로 오는 길에 한강대교를 건넜습니다. 군데군데 얼어붙은 한강을 내려다보며 이 다리가 없으면 참으로 불편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결시켜주는 통로같은 다리가 고마웠습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은혜로 1993년 27세 때 주님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술꾼이었던 저는 주님의 “다 이루었다(요19:30)”는 말씀을 통해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북부모임에 더해져서 수요 집회, 토요 청년회, 주일 온종일을 모임에서 보내고 또한 이곳 노량진모임에서 열렸던 C.B.F 화요정기모임에도 꼬박꼬박 나왔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북부교회에서 전국청년캠프와 효도캠프 등의 운영을 돕고 있었기에 믿은 지 얼마 안 된 저였지만, 많은 일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 열심과 제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는 시간들이었기에, 캠프가 끝나면 극심한 피로와 짜증이 몰려와서 다른 캠퍼들의 은혜가운데 기뻐하는 모습은 제게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그 후 한국에서 일본어와 통역을 전공했지만, 일본모임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구원 받은 지 6년이 지난 1999년에야 인도하셨습니다. 그 후 2000년에는 일본모임을 3개월간 방문하여 일본모임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그 가운데서 일하시는 주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일본모임 방문이 제게는 큰 믿음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제 의와 열심 으로 살면서 주님 앞에 나아간다고 말로만 고백해왔지만, 쿄토 니시쿄고쿠(京都西京極)모임을 방문했을 때 그 모임의 장로로 섬기시는 형제님께 개인적으로 말씀공부를 청하자, 성경을 펴셔서 시편 51편 17절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 하시리이다”
  우리는 주님 앞에 깨어진 완전히 부서진 마음으로 나아가서, 주님의 십자가 밑에 겸비 히 엎드려, ‘제가 조용히 여기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해주세요’라는 자세로 엎드리는 것이 합당한 자세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거치는 것이 없이 낮아진 마음자세. 주님이 요구하시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욥기를 펴서, 의인이었던 욥이었지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완전히 낮아질 필요가 있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겸비한 모습을 취하다가 결국 하나님 앞에 불평을 쏟아내던 욥 앞에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대해 열거를 하십니다. 어리둥절 하는 욥 앞에 주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의 진정한 모습을 뵌 욥, 상천하지의 하나님 앞에 욥은 낮아집니다. 친구들의 용서와 회복을 구하는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직접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가장 멋진 모습은 중보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대상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으로 기도하는 중보자가 되길 바라시고 계십니다. 이런 가르침은 충격이었습니다. 자기 열심 으로 살던 저는 이제는 더 이상 제 생각이 아닌, 주님의 생각을 알기 위해 주님 앞에 높아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엎드리고, 조용한 마음, 경건과 큐티의 진실한 모습인, 차분히 가라앉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세로 사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이런 놀라운 가르침이 바탕이 되어있는 일본모임을 본 이후 한국의 모임을 판단하는 교만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단순한 외형적 비교에서 오는 판단. 교만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2005년에는 슬프게도 일본 오사카(大阪)지역의 사카이(堺)모임의 오가와(小川)형제님께서 소천을 했습니다. 애도하는 마음으로 휴가를 내어 장례식에 참예했습니다. 동시에 존경하는 믿음의 선배와 이별을 고하는 모임의 성도님, 또 믿음의 거장이 떠난 모임의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주일 사카이(堺)모임의 성도님들은 차분하면서 오로지 주님을 바라보는 예배와 말씀과 복음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안에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면서, 아!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란 게 이런 것이 구나 라며 무릎을 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오가와(小川)형제님은 성도들이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을 바라보게 훈련 하셨습니다. 형제님을 생각하며 요한복음 12장 24절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감격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저는 어느새 이런 진리를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형제자매님들을 또다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 교만은 언제 없어질 수 있을까요?
  2010년 초 되어서 청년 몇 명과 일본모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사카이(堺)모임의 예배당을 보고 싶어서 들리려했습니다. 오가와(小川)형제님께서 성도들을 면밀히 배려하여 설계한 예배당은 구석구석 성도 사랑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나왔습니다. 30여명의 자매님들께서 박수를 치시며 저희들을 맞이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점심을 함께 하며 교제하는 가운데, 자매님들이 얼마나 모임을 사랑하고 그 가운데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계시는지 알고 놀랐습니다. 그 때, 10년전, 2000년에 제가 방문했을 때 오가와(小川)형제님께서 개인적으로 가르쳐주신 말씀이 번뜩이며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것은 기쁨(요15:9-11)과 평안(요16:33)입니다. 제자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는 저와 모든 성도에게도 해당됩니다.
  이 말씀을 교제할 당시에는 몰랐는데, 아! 과연! 사카이(堺)모임의 자매님들은 오가와(小川)형제님이 계셨을 때보다도 더 이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있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 뒤에서 저에게 말을 거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웅재야. 내가 원하는 것은 모임에서 성도가 이렇게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가운데 성장하는 것이란다. 이것을 내가 10년 전부터 오가와(小川)형제를 통해서 네게 말했는데도 너는 못알아 듣는 것 같더구나. 이제는 알겠니? 너도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겠니?”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공항을 향하는 차안에서 내내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저 “네, 주님”이라고 속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 온지 며칠이 지나자 장로님께서 차세대 목자를 위한 성경공부를 시작하려 하는데 주님께서 말씀 하신 게 있느냐고 여쭤보셨고, 이러한 간증을 한 후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교만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모임의 성도님들의 평안과 기쁨을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는 생각이 오히려 제 목을 곧게 만들었고, 완장을 찬 자처럼 굴었고, 저와 친밀히 교제를 나누던 청년들이 되레 저를 멀리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얼마 전 사카이(堺)모임을 방문해서 간증할 기회를 얻었을 때,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성도의 기쁨과 평안 외에, 완전한 일치(요17:23)가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50절에서 주님은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한 일이 하나도 없으셨고, 모든 일을 말하거나 하실 때,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과 보여주신 일을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자기가 아닌 아버지의 뜻을 알고, 듣고, 그대로 행하실 뿐이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놓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다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다 아는 사람처럼 구는 제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요. 일꾼 회의를 할 때에 주장하는 자세를 버리려하고 오히려 침묵을 지켜보았을 때, 제가 기도하던대로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아 주님이 머리이시며, 주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는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주님 앞에 진정 자신의 가치나 높아짐,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하나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존경하는 형제님과의 교제를 통해, 장로에 대한 순종을 깊이 교훈 받았습니다. 성경에 쓰여 진 대로 행할 때 주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모두는 주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저 또한 원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8장 17절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처럼 주님은 십자가에서 저희의 죄를 대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생애에서도 완전한 사람 되신 그 몸으로 저희들의 연약과 병을 친히 대속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닮은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이 모임에 주님이 계신다면 그 몸으로 채우려고 하셨을 많은 미숙과 미움과 아픔과 고난을 이제 저도 교회를 위하여 제 몸에 채우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뜻을 듣고, 그대로 행하고 싶습니다.
  노량진모임의 사랑하는 형, 매님께서도 주님의 뜻과 사랑을 이 땅에 잘 전달하는 잘 통하는 통로로서 주님께 더욱 크게 쓰임을 받으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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