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한 업(성도교제) [2013/01/28]

관리자 0 1,204 2017.01.28 06:35

2013.1.27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한 업
‘합당하다’는 ‘어떤 기준, 조건, 용도, 도리 따위에 꼭 알맞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활의 그 기준과 조건은 ‘복음’입니다.
롬 1:16절 말씀에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구원’입니다.
신약에서의 구원은 주로 죄, 죽음 그리고 사탄의 권세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구해 내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쓰였습니다.
구약에서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영적인 구원을 뜻하는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실제적인 의미, 즉 적으로부터 놓임 받아 하나님께로 해방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으로 죽음, 두려움, 사악한 자, 질병, 환난, 죄 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영적인 구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이뤄지는 모든 적으로부터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혹, 우리 자신이 복음과 구원에 대한 개념이 영적의미에만 너무 중요성을 둔 나머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축소시키고 약화시키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전인격적인 삶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하나님의 능력에 합당한 삶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은 하나님의 성령을 상징하였으며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하여 사명을 준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서의 직분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선지자로서의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가르침, 권면, 훈계, 약속, 엄한 책망의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습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일이 주된 임무였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제사장’인 동시에 ‘희생제물’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불렸습니다. 대제사장이시며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화평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요 머리이신 분으로서 우주를 다스리는 주권적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시며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왕으로서,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삶을 사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이며, 성령을 모신자로서, 또한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에 합당한 삶이길 원합니다.
 
 
‘생활하라’는 말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라’는 명령형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의 도시라는 ‘폴리스’에서 파생된 뜻으로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권리와 특권을 누릴 뿐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사는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명사형이 빌 3:20에 나오는데 시민권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의 특혜와 권리를 누릴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시민권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야합니다.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의 의무와 책임은 무엇일까요?
27절에 “한 마음으로 서서”라는 말은 전쟁을 하는 군인이 어떤 전투상황에서도 확고부동하게 서서 자기에게 맡겨진 기지를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협력하는 것”은 적군을 향해 공동전선을 편다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한 공동체 내에서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며 서로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합니다. 한 공동체가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려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리스도의 마음인 겸손의 자세가 공동체의 일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타날 때 한뜻으로 협력하는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협력과 조화의 비결인 겸손 이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의 의무와 책임은 그리스도를 대신해 고난을 달게 받는 삶입니다.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손해도 보고 고난도 받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말은 이 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고난 받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은 서로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 받는다는 것은 예수를 바르게 믿기 때문에 따라 오는 고난이요 어려움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는 나는 원치 않지만 오는 고난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는 말은 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원해서 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생활한다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시민 백성으로서 특권과 권리를 누리며 또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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