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5.4
기도하며 죄를 자백하자
장세학
사람들은 먹은 대로 나옵니다. 세상 것을 먹으면 세상 것이 몸에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세대가 영적으로 비약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이 적고, 오히려 세상 것들을 즐기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경 6장 이상 읽는 청년들도 서너 명 밖에 없습니다. 몽골 성도들은 하루 한 시간씩 성경 읽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인덕원 모임에서는 그 모습을 보고 창피함을 느꼈고 결국 성경 6독을 하자고 다짐을 했고 성공을 했습니다. 저 또한 이제 2독 째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TV를 30분보고 성경도 30분을 본다고 해도 TV의 영향이 더 커서 영적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으며, 1년에 성경을 얼마나 읽고 있습니까? 만약 하루에 1시간 이상씩 성경을 먹지 않는 다면 성도님들의 생활은 뻔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매일, 많이 읽는다 해도 교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읽을수록 더욱 겸손해 져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를 했지만 성경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남을 재는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격을 아무리 많이 읽고 배워도 교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격을 많이 읽고 배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받아 들이냐 도 중요합니다.
이 시간에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구약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이 위험해 처할 때 마다 기도를 하면 위기에서 모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는 기도를 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만 빼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 모임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해결을 하려고 전화기만 2시간 동안 붙잡고 있던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해결 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던 저는 자매에게 2시간 통화할 것을 1시간만 통화하고 나머지 1시간을 기도에 사용했다면 벌써 문제가 해결 되었을 것이라고 전해 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를 잃어 버렸습니다. 만약에 모임에 기도를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성도가 있다면 다른 성도들은 그 성도를 이상하게 볼 것입니다. 만약 노량진 모임에 고상한 기도가 아닌 열정적인 기도를 한다면 구원의 역사가 더욱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맥아리 없는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기도가 열정적인 기도인지 모르겠다면 주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인덕원 모임도 이러한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기 말씀을 준비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3개월이나 준비하면서 1~2명 구원 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만약 그 시간동안 기도에 더 노력했다면 더 많은 구원의 역사가 나타났을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한 기도 외에는 절대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는 기도를 통해서 밖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을 말미암아 구원받지 않은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기도를 드리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관악모임에 있을 때 성도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기도를 했습니다. 이 기도의 역사는 여름 수양회 때 몇 백 명이 구원을 받는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오늘 날의 성도들은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선장과 선원들 모두 구원 받을 방법을 알고 있지만, 알려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외국에 어느 유명한 와인 회사는 나이가 상당히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훌륭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그 포도나무가 오랫동안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이 포도나무들은 근처에 있는 강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어서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물을 흡수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깊숙이 들어가서 흡수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가지치기를 자주 해주는 것입니다. 필요 없는 부분을 가지치기 해줌으로써 나머지 부분이 더욱 잘 자라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자주 가지치기를 당해야 합니다. 매를 많이 맞고 가지치기를 당할수록 양질의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도 잘 못된 부분을 지적 받고 고쳐야 영적으로 더욱 잘 자라날 수 있습니다. 저는 관악모임에서 상당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저는 관악모임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저보고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관악 모임을 떠나 인덕원 모임으로 갔습니다. 처음 인덕원 모임에 가서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위로해주는 성도들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다가와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인덕원 모임 성도들의 의도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겁니다. 제가 교만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가지치기를 하셨던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면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권면을 달게 받지 않는다면 더욱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진로를 받게 됩니다. 어떤 성도는 자기 주관에 사로 잡혀 있어서 성도들이 아무리 충고를 해주고 가지치기를 하려고 해도 듣지 않고 교만했습니다. 결국 그 성도의 아들이 하나님의 진로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15절]
정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절대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채 복음에 대한 지식만 있는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감기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감기가 낫지 않습니다. 감기약을 먹은 사람이 낫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복음에 대한 지식을 꾀고 있으면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돼지나, 나귀 같은 인생이 양의 인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아직도 거듭나지 않은 나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선장이 한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고 모두가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지만 선장은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오늘 날, 믿지 않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지만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아무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 받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을 해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모두 죽는다고 말을 해줘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 사람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어느 누구도 저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저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가롯 유다에게 주님을 팔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잘못 된 생각을 주입시킵니다. 주님을 믿는 것 같은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마귀는 믿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믿는 성도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주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에게도 마귀는 생각을 주입시켰습니다. 절대 배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했던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당당했기 때문에 결국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절대 자기 자신을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마귀에게 끌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은 종의 자세로 대아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미천한 우리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너무 영광이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 씻기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발을 씻기지 않는 다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하십니다. 거듭난 성도들도 육식적인 것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육식적인 것만 찾는 것은 성도가 아닙니다. 거듭난다면 거듭난 성도만의 특성이 있습니다. 시궁창에 있던 돼지가 거듭나서 양이 되었는데 계속 시궁창으로 가려고 한다면 양이 아니라 돼지인 것입니다. 돼지이기 때문에 시궁창을 좋아하는 습성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한 때 담배를 피우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술은 어떻게 해서 끊었지만, 구원 받기 전부터 피우던 담배는 아직 끊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런 성도가 생명이 있는 분이라면 자신의 행동을 통해 엄청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 성도는 괴로움을 느꼈고, 주님께 담배 끊는 것을 도와 달라고 기도로써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주님은 그 성도에게 네가 누구냐고 여쭤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대답을 한 성도는 그 순간 이후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겨우 이런 것에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주님께서 여러분의 발을 씻어 주시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신 것은 성도들이 죄를 지을 때 마다 주님께 고백해서 씻어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손을 몇 번이나 씻습니까? 요즘 여기저기에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말들이 많아서 저는 하루에 4~5번 정도 씻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통 발은 하루에 한번정도 씻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무리 발을 안씻어도 3일 동안 안 씻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걸리는 것이 있는데도 3일이 아닌, 20년까지도 안 씻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과 싱싱한 사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부터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는 다면 주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는 다고 정직하고 정확하게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바로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죄를 지으면 마음의 걸림이 옵니다. 여기서 자백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주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저의 큰 형수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큰 형수님께 복음을 전했지만 큰 형수님은 불교를 믿고 있어서 잘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인정이 많으신 분이였습니다. 동네에서도 인정 많기로 유명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차리셨습니다. 며느리인 큰 형수님은 본인의 시어머니께서 아침밥을 차리고 있을 때에도 계속 자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시어머니께서 시댁 살 이를 하셨습니다. 노는 것도 굉장히 좋아 하셨습니다. 돈을 빌려서까지 노는 것에 흥청망청 쓰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큰 형수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 내야하는 돈이나 문구류를 사야하는 돈이 필요하지만 형수님께 말을 못 했습니다. 매일 돈 없어서 빌려야 한다고만 하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큰 형수님은 작은 형님들의 월급들도 뺏어가고 저의 결혼식 축의금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큰형수님이 밉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 큰 형수님이 키워주셔서 어머니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큰 형수님은 나이가 들어서 양로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양로원에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쯤에 큰 형수님에 대해 비난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비난하는 사람과 그 이야기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쉽게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본인도 같이 흡수되어 같이 비난하고 있는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큰 형수님을 비난하는 얘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비난하는 마음이 들어 와 버린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 같이 느껴졌던 큰 형수님을 미워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양로원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생각보다 차라리 지옥에 갔으면 좋겠다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서있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 없는 사람이 전해준 이야기는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저는 주님께 비난의 마음을 가진 것을 자백하고 다시 큰 형수님께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더니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저의 마음을 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겁니다. 큰 형수님이 요양원에 있을 때에도 가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