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김종만(복음) [2014/12/16]

관리자 0 707 2017.01.29 08:54
2014.12.14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김종만
 
 
저는 어린 시절에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의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시고, 스스로 성가대를 이끄는 일원으로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고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한동안 사귀다가 어느 날 그의 영혼이 거듭났는지를 분별키 위해 조심스럽게 거듭났느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무슨 말이냐고 되물어 왔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의 영역에 이르지 못한다고 성경에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우리가 일부만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설마 지옥에 보내시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과 영광 속에서도 사람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티브이에서 오랫동안 부모님을 떠난 자식이 자신의 부모님을 만났음에도 알아보지 못하는 헤프닝을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부모님임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성품은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은 반드시 죄 값을 치루 게 하십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의 값을 치루고 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여학생이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하다, 경찰에게 체포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바로 체포가 되었을 경우, 바로 즉결 심판으로 법정으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마침 심판을 담당하는 재판장이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재판장은 공의로운 판사였습니다. 딸은 죄의 값대로 형벌( 범칙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판결 이 후 재판장은 법의를 벋고 내려와 딸에게 부여된 범칙금을 스스로 납부하면서, 딸의 죄의 값을 치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 같습니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을까. 사람의 마음으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드로 전서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 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 구절에서 오직 한사람이 지칭 되여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않은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는 친히 나무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현대의 사형 법은 고통을 당하지 않고 바로 순식간에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사형법은 매우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이었습니다. 그 법은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로마 시민권자 에게는 절대 줄 수 없는 형이었습니다. 다른 민족에게 행할 수 있다하더라도, 황제의 명령으로만 그 형을 부여 할 만큼 매우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형입니다.
하지만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티 없이 깨끗한 예수님에게 그런 무서운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가 죄인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도 아들의 죽음을 보기 어려워 하늘을 어둡게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에 대한 진노와 고통을 모두 안고 끔찍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형을 받으려면, 세 번의 심판을 하여야 합니다.
빌라도 총독은 세 번의 재판에도 죄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주민들의 뜻에 의해 형을 언도 받습니다. .라도는 두 번의 형벌을 선고합니다. 첫 번째는 채찍질입니다
(이사야 53:5)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요한복음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 채찍질 형으로 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이러한 형벌을 예수님께서 받으신 이유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사야 52: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이미 이사야에서 예수님께서 채찍질에 의해 이렇게 상하실 것을 예언했었습니다. 하지만 형벌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시는 형벌을 당 하십니다.
(시편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시편 저자는 1,000년 전에 이러한 예언을 통해 십자가형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 하였습니다.이 시기에는 있지도 않던 십자가형을 자세하게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역시 이러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렇게 6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힘들게 고통을 당하시며,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머리로 지은 죄 때문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저가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가슴에 창을 찔리셨습니다.
라는 간증을 예배시간에 어느 형제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복음 3:!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변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속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영원이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이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사 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미래의 죄에 대해 사람들은 실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은 사람의 경험으로서 이해할 수 있지만, 미래의 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회개를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죄는 이미 미래의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골로세서 2:13-14) 또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로마서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지 3일 만에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런 아름다운 구속을 알고, 믿고, 예수님을 내 주로서... 나를
구속하심을 인정하고 고백을 함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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