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옷 자 락-최병배(복음) [2014/12/29]

관리자 0 691 2017.01.29 08:55
2014.12.28
 
 
 
 
옷 자 락

최병배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마태복음14:35.36)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병든 자들이 예수님 보기를 갈망하였는데 그 이유는 위의 말씀대로 그 옷자락에라도 손이 닿으면 병이 나았기 때문입니다. 수년 동안 병으로 고생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간절하게 그 병이 낫기를 갈망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수님 당시의 시대에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는다는 것은 병을 가진 자들과 가족에게는 진정한 복음이었으면 혹 예수님이 자신의 동네로 지나가신다면 그분은 만나는 것은 일생의 간절한 소원으로 얼마나 그 만남을 갈망 하였을 까요? “옷자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자체가 정말 간절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소원을 의미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 안에는 수많은 애절한 사연들이 담겨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간절한 소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남을 통하여 성취가 되는 놀라운 장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에서 세 가지 그 애절한 사연을 살펴보고 어찌하여 그 절망이 축복으로 바뀌었는지를 보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은혜를 함께 누리도록 하겠습니다.
 
 
1. 간절한 사연
1)혈루증여인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 함 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마태복음5:25-29) 혈루증이라는 불치병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으면서 자신의 모든 재산도 병 치료에 써버리고 이제는 아무 소망 없이 지내던 한 여인이 예수님이 가시는 뒤에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지고 병 고침 받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2)사마리아 여인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한복음4:14,15)
이번에 만날 사람은 사마리아의 한 여인으로 그녀는 아무도 물을 길지 않는 뜨거운 시간에 물을 길러야 할 만큼 타인의 눈을 피하여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생수에 대한 말씀에 다시는 물 길으러 오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물을 달라고 간청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믿고는 그토록 피하던 사람들에게로 뛰어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이 또한 놀라운 일을 볼 수가 있습니다.
3)나아만 장군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열왕기하5:14)
이번엔 예수님이 오시기전 구약에서 문등병이 걸린 이방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지만 문등병이라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였기에 비록 적대 적인 국가인 이스라엘이었지만 그곳에 자신의 병을 낳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명을 걸고 오직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한 갈망으로 선지자를 찾아가게 되고 그의 말대로 강에서 몸을 씻어 그 병이 씻음을 받는 참으로 놀라운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2.기적의 공통점
지금까지 세 가지 다른 간절한 사연을 통한 놀라운 사건을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다른 간절함 속에서 각자가 받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자신을 인정(자신을 내려놓음)
먼저 혈루병 여인의 경우, 그 여인은 병을 고치기 위하여 수많은 노력을 하였을 것입니다. 안 먹어 본 약이 없고, 용한 의사라 하면 어디에 있든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가진 재산과 의료적인 지식이 그녀를 낳게 할 것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의술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었던 불치병 앞에서는 어떤 약도, 의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맞지 않는 처방으로 그녀의 돈을 받아 챙기는 나쁜 의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써버리고 절망중에 있는 이 여인은 이제 자신이 지금까지 의지하던 재물과 의술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사마리아여인은 어떠했을 까요? 예수님께서는 생수를 달라고 조르는 여인에게 갑자기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굉장히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속 깊은 고백을 합니다. “남편이 없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남편이 다섯 번째였건만 그녀가 갈망했을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누구보다도 진실한 사람과의 관계를 소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그녀도 예수님에게 자신의 내면의 갈증을 드러내어야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요? 그는 선지자가 요단강에서 몸을 씻으라는 말에 분개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찾아온 길이건만 기대와는 달리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선지자에게 분노하며 떠나가려합니다. 그런데 그가 화를 낸 진정한 이유는 무얼까요? 그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병을 보여주기를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향수로 자신의 냄새를 감추려하고, 갑옷과 옷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을 것입니다. 그런 그였 기에 선지자가 무언가 큰 기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의 병을 고쳐줄 것을 기대하면서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로 온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옷을 벗고 목욕을 하라는 말은 죽기보다 싫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토록 강경한 그였지만 병을 낳고자 하는 그의 갈망과 주변의 권유로 결국은 옷을 벗고 물 에 들어갑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2)하나님을 인정
혈루증여인은 이제 예수님을 오직 자신의 병을 고쳐주실 유일한 분으로 인정하고 그의 옷자락이라도 낳을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 혼잡한 중 에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절대 절명의 몸부림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가 그렇게도 꺼려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뛰어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거 합니다. 그녀의 그 행동에는 예수님만이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임을 인정 하는 그의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나아만장군은 어떻습니까?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순종하여야 했습니다. 그가 가진 지위와 신분도 하나님을 능가할 수 없으며 말씀의 권위 앞에서는 연약한 피조물임을 인정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3)믿음의 행동의 결과
혈루증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병의 근원이 사라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병의 근원을 없앨 수 있는 분. 그가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마리아여인은 그토록 갈망하던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를 메시아이신 예수님과의 관계회복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나아만장군은 그를 괴롭히던 문둥병에서 자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 사람의 간절한 소망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음의 행동을 보일 때 성취되었습니다.
 
 
3. 창조주의 간절함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22:12)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물로 삼으려는 순간입니다. 이 긴박한 순간 과연 누가 과연 가장 긴장하고 있을까요? 이삭을 죽이려하는 아브라함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일까요? 아님 이 모두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일까요? 말씀에서 내가 이제야라는 말속에서 하나님이 이 순간 얼마나 긴장하고 계셨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통해 온 창조물들에게 모형으로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혹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게는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만큼이나 큰 실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온전한 자녀로 하나님과 함께 하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온전함을 누구보다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온전함을 바라는 이상으로 우리의 온전함을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간절함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소망의 성취가 나의 간절함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간절함을 깨달을 때 혹 나의 간절함이 나의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말한 사자굴의 다니엘 고백처럼,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말했던 에스더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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