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4.15
율법과 제사
차갑술
우리 사랑하는 형, 매님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스테포드 형제님의 찬양을 들으며 경쾌한 기분이 들었고, 한 분도 낙오됨 없이 천국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둘째 주는 꼭 복음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매년 12번의 복음 시간은 있었지만 작년에는 한 번도 제가 복음을 전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2년 만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의 변화를 일으켜서 모든 분들의 죄악을 담당하신 음성으로 모든 분들에게 신령한 복이 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금방 멸망할 소돔 사람들 가운데 롯이 하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롯이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빨리 이 땅을 나가자! 하였을 때 사위의 반응은 농담하지 말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결코 말씀이 농담으로 들려지는 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께서 법(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이하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이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대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이 거룩이고 공의이십니다. 하나님께는 한 명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죄악을 담당하였을 때 그 아들을 죽이는데 까지 내어주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간음과 살인, 도둑질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감히 말씀드리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티끌만한 문제라도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하신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죄 가운데 거하게 하실 수 있습니까? 보시기에 좋았고 아름다웠던 세상에서 그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귀가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참된 안식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사탄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을 보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이 나옵니다. 깨끗한 집을 지으면 사람들이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지저분한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준비합니다. 모든 오물들을 거기에 넣고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지으신 집을 거룩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쓰레기통이 필요한데, 마귀와 그 사자들이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옥은 마귀를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 거룩한 하나님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어찌할 수 없어 내 속성은 하나님의 법에 미달되는 어리석은 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9장 7~8절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를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말씀하신 것을 모두 지키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639가지 법, 그 중에 대표적인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못 지킬 것이라는 걸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법을 지키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한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14절을 통해 보시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걸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양을 끌고 와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염소와 송아지로도 드렸는데, 구약에서 그 양의 본체는 바로 요한복음 1장 29절에 나오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죄가 없는 양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양이 죽은 그 피를 보고 믿은 우리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변화가 없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후자의 경우 죽은 양에 대한 대가가 없습니다. 이사야 44장을 보면 기억에서도 지우신다는 말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는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9절)”하시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주님께서 만족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며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실 때 열매가 열리지 않은 무화과나무를 보았습니다. 무화과가 늘 열려야 하는 때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주를 하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너를 기다리고 있다, 지키고 있다. 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기 원하시는데 죽음의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어떤지 돌아보게 됩니다.
양을 잡아서 드렸을 때 그 피를 통해서 용서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예수님의 피가 염소나 송아지만도 못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짐승의 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15절을 보면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님,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생명책”입니다. 마귀와 그 사자들, 아담과 그 이후에 태어난 죄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다른 책에 적혀져 있습니다.
이것은 호적에 관한 문제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아담의 후예, 마귀,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홀로 십자가를 지고 모든 죄를 사하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접되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본인은 호적이 올라가는지 모릅니다. 호적은 아버지께서 올리는 것입니다. 다른 책에 쓰여 있는 그 이름을 지우고 생명책에 이름을 쓰는 것은 호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보혈을 통해서 다른 책에서 이름을 삭제하고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침례 상담이 잠시 후에 3층에서 있을 텐데 내 이름이 어디에 있느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모임에 잘 참석하였느냐, 어느 부분에서 헌신하였느냐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나의 족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는 고린도후서 6장 2절 말씀처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이 모임 가운데 임하므로 우리의 삶이 언제 종지부를 찍는다고 할지라도 하늘에서의 그 소망을 생각하며 축복을 누리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