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문둥병-이완성(복음) [2012/05/12]

관리자 0 1,272 2017.01.28 05:30
2012. 5. 6
 
 
문둥병
                                   이완성
 
어느 사회자 분이 전도 집회 때 앞에 나가서 “은혜의 잔치입니다. 행복한 잔치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준비 없는 것이 어떤 은혜의 잔치입니까? 준비 없이 오라는 것은 말뿐인 것입니다. 미리 준비를 다 해 놓고 와서 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대접하고 집회를 했을 때 결원없이 다 나왔습니다. 시간도 투자하지 않고 물질도 투자하지 않고 은혜의 복음만 얘기하면 은혜의 복음이 뭔지 알겠습니까? 투자 없이 헌신 없이 영혼들을 인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릴 이끌어가도 복음 집회 하는데 시간 투자하지 않고 어떻게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기대합니까? 그 사람들이 와서 자네들도 안 나가는 시간. 그 바쁜 시간에 내가 뭐 하러 가서 듣는가? 그렇지 않겠어요? 성경에서 뭐라고 합니까.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 우리가 진주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진주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누구에게 이것을 귀하다고 하겠습니까? 내가 복음을 귀하게 여기는 가 먼저 반성하고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날 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성경이 왜 이렇게 검냐. 이건 죄를 상징한다. 내 죄에요. 우리 인간이 죄를 짊어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이 죄를 가지고 그대로 죽으면 심판 받고 지옥에 영원히 떨어진다. 이 죄를 깨끗하게 하려면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그래서 바로 이 죄를 사하기 위해서 이게 빨간색이라고 했죠. 성경은 쉬운 겁니다. 무식한 사람도 안 배운 사람도 구원받도록 만든 책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느니라. 귀로 듣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몰라도 못 읽어도 귀로 들으면 구원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말로만 은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도록 쉽게 한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 마지막 날은 죄인이 의인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의인되는 방법은 양 밑에 내가 들어가니까 의인이 되더라. 오늘 이 말씀을 다시 드리길 원하는데. 오늘은 각별히 레위기 13장과 14장에 나오는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 읽다보면 문둥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문둥병이 걸리면 코가 없어지고 얼굴이 문드러져요. 문둥병에 걸리면 굉장히 보기가 흉합니다. 그 사람들이 소록도에 다 있습니다. 저희가 소록도에 전도 여행을 갔는데 손가락도 없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는 거에요. 그걸 안 먹으면 전도를 못 해요. 공감대가 없으니까. 어떤 형제님이 그걸 막 먹는 거에요. 저는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내논 것 중에 껍질 까 먹는 것만 먹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게 됩니다. 지금은 육지에도 문둥이 촌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무조건 소록도에 보냈어요.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어느 날 자기가 문둥병에 걸리게 되면 사랑하는 가족과 원치 않아도 이별하게 됩니다. 문둥병은 옮으니까. 소록도에서 대화를 해 보니까 문둥이들이 흉측한데 옛날에는 그래도 높은 직위나 권력을 누리는 분들도 있었고 별에 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근데 어느 날 자신에게 문둥병이 찾아왔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행복은 사라졌다고 얘기합니다. 모든 것과 분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문둥이는 죄를 상징하는 병입니다. 이 문둥이 이야기는 곧 죄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성경 읽다가 문둥이 나오면 이건 죄 이야기구나 하고 읽으세요.
레위기 13장은 죄의 성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장은 죄를 깨끗이 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모든 것이 그림자입니다. 성경 전체를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에요.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죄 속에 빠져 있는 인간을 구원할 메시야가 오신다. 이게 구약이에요. 신약은 메시야가 오셨다 이게 신약이에요. 그리고 오신 메시야가 다시 오신다.
레위기 13장 3절을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8절. 우리들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죄인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로마서 7장 17절 보면. 이제 이것들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인이라. 내 속에 거하는 게 죄라는 겁니다. 죄는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쳐다봤을 때 죄가 무섭게 보였으면 절대 안 따먹어요. 쳐다 본 즉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도 한 나무인지라 따먹었단 말이에요. 죄라는 것은 뿔 달고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죄는 미혹합니다. 죄의 본질은 처음에 외부에서 심어도 결국 자라는 것은 속에서 자랍니다. 야고보서에 보니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착하게 아무리 살라고 해도 착하게 삽니까? 자기만 알게 됩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분리가 시작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이냐면 죄의 병에 걸리면 죄는 결국 하나님과 분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분리가 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가 가리어서 듣지 아니하시며. 죄가 가리니까 하나님이 듣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는 겁니다. 그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바람이 먹구름을 보내면 해가 보이는 것처럼 죄를 보내면 하나님 있다고 설명 안 해도 하나님이 계신단 것을 알게 됩니다.
죄 때문에 심판 받을 때는 아비와 아들이 따로 받게 됩니다. 우리가 때때로 아버지가 지옥 가는 데 나도 따라 가야죠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개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말 천국과 지옥에 분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문둥병으로 부정하게 된 것은 모두 불태워버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냐면 실제로 우리가 죄를 사함 받지 못하면 우리 죄인들은 불과 유황에 불태우란 얘기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거두어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갖가지 우상을 섬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불법을 행하면 풀무불에 던지라고 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면 결국 멸망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레위기 13장을 통하여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14장을 보면 문둥이가 깨끗해지는 방법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16장 6절에서 10절까지 읽겠습니다. 그 다음에 21절. 여기 보면 깨끗하게 되는 방법이 무엇이냐. 염소를 또는 송아지나 양을 두 마리를 데리고 와서 한 마리는 잡아서 양에게 안수시키라는 겁니다. 안수는 전가시키라는 말입니다. 문둥이가 양에게 안수하면 문둥병이 깨끗하게 되는 건데. 죄를 지은 사람은 양에게 머리 위에 안수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죄가 양에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여호와께 완전히 번제로 드리고 한 마리는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내보내라고 했는데. 광야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광야는 물도 없고 풀도 없고 아주 삭막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이 염소 한 마리가 광야에서 버림을 받았어요. 염소가 물이 있어요. 풀이 있어요? 염소가 광야에서 이리 저리 헤매면서 울다울다 쓰러져서 죽어 갑니다. 오늘날 우리 들이 죄를 짓게 되었는데, 사단이 짓게 만들었죠.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려고 하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겁니다. 마귀가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니까 죽음을 내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우리를 위해 죽음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원래 내가 만든 거라 죽음을 줄 필요는 없지만 안 주면 죽인다고 하니까 살리려고 지불하는 겁니다. 염소가 광야에서 울부짖고 죽어가는 모습은 주님이 우릴 위하여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이었다는 겁니다. 죄인들에게 예수님의 피가 뿌려지면 깨끗하게 된다는 겁니다. 두 마리의 산새가 나오는 데 하나를 잡으라는 건 피 흘리고 죽으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한 마리는 피를 날개와 다리에 발라서 날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상징합니다. 요한일서 2장 1절을 보면 대언 자가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의 앞으로의 죄도 가져가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죄를 내가 대속했다고 말하시는 대언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7~18절.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 지 아니한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 지 아니 한단 말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항상 송사해도 항상 우리 앞에 예수님의 흔적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 증거를 볼 때 저들은 무죄라고 판결하십니다. 이런 주님을 위해 우리가 기꺼이 목숨 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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