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6.24
강하고 담대 하라
이달희
반갑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노량진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우리 노량진교회에 훌륭하신 형제님들 많이 계신데 부탁을 받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함께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이곳에는 제가 존경하는 장명렬 장모님과 김한식 형제님 가정이 계십니다. 노 성도님들께서 열심을 품고 기도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 말씀을 읽겠습니다. 1절부터 9절입니다. 5절과 9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씀은 ”강하고 담대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섬기던 수종자라고 1절에 나와 있습니다. 위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 이후 모세를 극진히 받들고 섬기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던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해야 하는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씀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모세가 이루지 못했던 큰 계획을 실현해야 하는 입장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강하고 담대 하라”입니다. 신명기 31장 6~8절, 31장 23절에서도 말씀하시는데, 그 마음과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한 대적이 있기 때문에 강하지 않고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9절에 보면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담대히 하라는 것(개역한글)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그가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바라보고 12명이 탐지를 했을 때, 10명의 잘못된 정탐꾼이 가지고 있었던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 불신과 원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나 연약함, 실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말씀을 믿고 격려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기에 만만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나 정사와 권세에 대적을 두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강하고 담대함의 자세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가? 하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사무엘상 14장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군사들을 생각해 볼 때, 사울 왕 곁에 있는 군사는 600명입니다. 그 앞장인 13장 22절에 보면 칼이나 창, 무기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적을 살펴보기 위해 5~7절을 보면 병거가 삼만, 마병이 육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습니다. 비교가 안 되는 전쟁입니다. 기가 죽고 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요나단이 생각한 것은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9절 말씀에 나온 대로 그들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10절) 올라가면서 백성들이 공포에 떨고 지진도 일어났습니다. 20절에 보면 전면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고 23절에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요나단은 절대적인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블레셋 진영에 나아갔을 때, 그의 믿음을 따라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 선민입니다. 요나단은 지금까지 능력으로 인도하여 주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역대하 44장에 보면 아사왕이 100 만 명의 후새와 싸울 때 하나님께 매달려서 대승하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의지하고 나아갔을 때 큰 승리를 거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입니다. 다윗의 믿음과 용맹을 교훈 받고자 합니다. 다윗에 속해 있는 이스라엘 진영은 엘라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반대 건너편은 블레셋 사람들이 진영을 치고 있습니다. 블레셋 진영에는 가드 사람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듣고 놀라서 두려워 떨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목동으로 양을 치고 있는 중에 아버지 이새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전장을 구경하지 못했던 다윗은 형들에게 줄 음식을 들고 갔는데 골리앗의 고함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심히 도망하였는데 다윗은 26절과 36절에 나오는 대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확실히 믿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으로 충만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대한 골리앗만 보여서 자신들의 나약하고 초라한 것이 보였을 뿐이지만, 다윗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전쟁도 승리할 수 있고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았을 때, 현재의 나약한 모습에 어떻게 부흥되고 발전될 수 있을까?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어떤 곳에서도 함께하시는 편재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낮게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자부심과 긍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는 분입니다. 내가 그런하나님을 진 정 믿고 있는가? 슬픔, 걱정, 근심, 두려움 등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러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죽은 하나님으로 대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패배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문제가 됩니다. 32절에 보면 소년 다윗은 사울 왕 앞에서 주의 종으로서 담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에게는 하나님이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33절). 다윗은 곰과 사자를 죽인 적도 있었는데,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해주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 도우신 손길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던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은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바로 경험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 요새, 건지시는 자, 하나님, 피할 피난처, 힘’이라는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도 태연하고(시편 27:3)’,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습니다(사무엘하 22:30).’
하나님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경험되어진 것이지, 경험되어지지 않은 믿음은 현실 속에서 낙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하나님을 알았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과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삼상 17:45~47).
시편 78편 21~22절을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에 따라서 하나님이 잘되는 것을 판단하는 그릇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울이 중상을 입고 자결하는 중에 그의 마음속에는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백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신뢰가 없었던 사울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에 나오는 부분을 다 나누지는 못하였지만,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율법책을 묵상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여호수아 1:7~8).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알게 되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 말씀과 같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 이기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강한 것보다 더 강한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권면이 아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