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노량진 모임에서 말씀-박찬래(성도교제) [2014/02/10]

관리자 0 1,471 2017.01.29 08:18
2014.2.9
 
 
노량진 모임에서 말씀
박찬래
계1:12-18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 주 예수님은 겸손과 인성으로 그 자신을 옷 입히셨다. 그래서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서의 풍성한 영광이 가리워졌다(빌2:5-8). 그의 영광의 풍성한 가운데 오셨다면 어떤 눈도 주님을 바라보고 살지 못했을 것이고 아무도 주님께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람들은 즉각적이고 신속한 죄의 선고에 직면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갑작스럽게 이 땅에 떨어지는 태양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바로 즉시 작은 지구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 죄인들은 "그분의 입김으로 소멸되고 그의 오심의 밝음에 의해서 파괴되었을 것이다(살후 2;8, NKJV). 십자가에 못 박히심도, 죄를 대신 지심도, 속죄도, 구속도 없었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보이는 능력 가운데 오셨다면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운데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이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후13:4)." 우리 은혜로우신 주님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종이 되셔서 순종하심으로 그 자신을 겸손케 하셨고, 받으신 고난으로 온전한 구원자가 되셨다(히5:8-9). 이 땅에서 주님이 수치 받으시는 기간 동안, 죄인들과 세리들이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그분과 함께 식사할 수 있었고, 스스로 의롭게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그 의로우신 분을 고소할 수 있었고, 배반자는 신실하신 그분과 함께 떡을 뗄 수 있었고, 한 제자는 그분의 품에 의지하여 누울 수 있었고, 한 죄 많은 여인이 자유롭게 다가와 향유와, 다가갈 수 없는 영광가운데 계신 그분의 발을 눈물로 부을 수 있었고, 대제사장은 그 거룩하신 분을 훼방하며 비난할 수 있었고, 군인들은 영광의 주님을 다시 또 다시 때리며 그분의 손과 발에 못 박을 수 있었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6)" 그분의 수치와 고난의 기간은 끝이 났고 다시 결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죄를 위해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10:26), 그분이 두 번 째 나타나실 때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실 것이다(히9:28).
주 예수님은 이제 천상에 아버지의 오른편에, 가려지지 않은 영광과 능력 가운데 앉아 계신다. 요한이 본 것은 이렇게 영광스럽게 높이 올려 지신 주님이시다. 그분이 지상에서 계신동안, 사랑받는 제자였고 그분과 가장 친밀했던 이 똑같은 요한이,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앞에서 즉시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주 예수님은 육체대로 알던 그분이 아니었다. 요한은 주 예수님의 진정한 영광의 더 풍성함을 경험한다. 고귀하고 높이 들리시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수많은 성도들과 천사들과 모든 창조물이, 그분 곁에서 합하여 울리는 목소리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외치고 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더 숭고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그분을 더 이상 육체대로 알아서는 안 된다. 그분은 더 이상 우리가 육체대로 알아왔었던,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고후13:4) 갈릴리의 온유한 청년이 아니다. 이는 단지 33년 동안만 세상에 계셨다. 그러나 이제 영원토록, "..그분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딤전6:15-16)."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주의를 가지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이름을 대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그분과의 개인 경건의 시간이나 예배시간에 부주의하게 그분께 나가야 겠는가? 우리가 감히 그분의 명령을 가볍게 여겨야겠는가?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
인자와 같은 분 요한은 인자 같은 이에게 돌이켜 보았다. 그 용어는 그분의 신성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단7장, 막14), 여기서는 그분의 인성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삼위일체의 두 번 째 분으로, 육체를 입으시기 전, 몸도 인간의 이름도 없으셨다. 그분이 먼저 인성을 취하시고 인간의 이름인, 예수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갈4:4, 히10:5, 마1:21)"를 가지셨던 때는, 이 영원한 아들이 아버지께 순종해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뿐이었다. 그분은 유일하고 한분이신 하나님이며 사람이셨던,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사람이셨다.
복 스런 사실은 주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셨을 때, 그분은 그 인성을 남겨 두고 가지 않으셨다. 아들이신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존재하셨고, 그분의 인간 이름 ‘예수’를 가지신채 사람으로서 영원으로 돌아가셨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딤후2:5)로서 하늘로 돌아가신 것이다. 모든 것과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하늘보다 높은 위치에, 어떤 사람도 얻지 못했던 위치에 이르신 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자(골1:18, 계1:5)시며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3)시며,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롬8:29)이신 인자시다.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시고(골1:18), 예수님이라는 인간의 이름에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입이 그분을 주권자이신 주로 고백하게 하신 것이다! 유일한 하나님이자 사람으로서 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 중개자로 계신다. 영원한 사람으로서 모든 면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셔서 영원히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의 직무를 계속하실 수 있다 (히2:14,17). 계1:18은 이렇게 이해될 수 있겠다. "곧 산자라"는 그분의 영원한 신성을 ,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는 그분의 인성을 ,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는 그분의 현재 상태를 영원한 하나님이자 사람으로서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영원히 동일시하시며, 우리가 하늘에서 그분을 인자로서 영원토록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심판자와 대제사장
그러나 이 인자는 요한이 육체대로 알았던 그분으로서가 아니다. 요한은 구속되지 못한 육체로 하늘에 올려 져서 영광중에 계신 주님을 뵐 때, 한 때 그의 동료였던 그분과 그 자신 간에 얼마나 큰 대조와 거리를 느꼈겠는가!
양털과 눈처럼 흰머리와 머리카락을 가지시며 힘 있게 비취는 해 같은 얼굴을 가지신 예수님은, 장엄하고, 영원하고, 온전히 순결하고, 지혜로우시며, 능력 있으시고 접근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거하신다. 그는 옛적부터(7:9) 계시고 모든 세상을 심판하시는 (18:25)시다. 그의 지혜는 영원하시고 그의 판단은 순결하시다. ‘불꽃과 같은그의 눈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꿰뚫으시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는많은 물소리와 같은 목소리로그분의 순결하고 온전한 심판을 선포하시고번쩍이는 청동과 같은 그가 밟으시는 어느 곳에서든 그분의 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신다. "그는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을 (1:3)"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타락한 육체에 있었던 요한은, 너무나 순결하시고 거룩하시고 능력 있으신 그분의 존전에서 자신의 죄악에 대한인지로 즉시 압도되어 마비된다. 그분의 발 앞에 죽은 자처럼 엎드러진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삼상6:20)" "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나1:6)"
그러나 주님을 찬양 할지어다! 그 두려운 심판자이신 주 예수님께서 또한 대제사장의 옷인(레16:1-4),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금띠로 가슴에 두르셨다. 큰 대제사장(히4:14)로서 그는 요한에게 오른손을 은혜로이 얹으시고 그를 세우시며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 나는 영원하고 유일한 하나님이다. 나 외에는 심판에 이를 자가 없다. 그러므로 로 내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나는 너를 위해 죽었고 세세토록 살아있는 하나님이며 사람인 자로서 너를 위해 중개하기 위해 영원히 산다."
촛대 사이에서
예수님의 속죄 사역에 관해 말할 주님은 영광중에 앉아 계신 것으로 묘사된다(10:11-12). 그러나 2:1에서는 금 촛대 가운데 서서 다니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 스데반의 환상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계셨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관해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시며 서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영원토록 그의 위대한 구속사역을 끝마치셨지만, 예수님은 그의 성도들을 각각 그리고 교회로 돌보시기 위해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금 촛대는 각각 지역교회를 대표하고 전체로서는 우주적인 교회를 일컫는다. 주 예수님은 교회가운데 그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서계시고, 지역 모임을 각각 돌보실 그들 사이에 거니신다. 그는 평가하시고, 격려하시고, 고치시고, 권고하신다. 에베소서 5장에서 교회를 사랑으로 돌보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 양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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