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죄 가운데서 구원받는 은혜로운 소식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는 자라면 누구든지 죄 값을 전부 사해주시는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의 기회가 주어졌고 다음엔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에게 복음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순서에 상관없이 믿지 않으면 지옥 가고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저희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롬 1:16).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그 사실입니다.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영생을 주시는 복된 소식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생명도 없습니다(고전 15:3~4). 우리가 가진 행위(능력, 노력 등)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신 구원의 선물을 우리는 그대로 믿고 감사히 받기만하면 됩니다(엡 2:8~9). 첫 조상 아담의 범죄 함으로 ‘정녕 죽으리라’고 한 말씀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보내주셨고 믿는 자는 모두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구원 계획을 가지고 실행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요 3:16).
창1:1과 요1:1에 태초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태초라는 단어를 통해서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창1:1절의 태초는 히브리어 원어의 ‘베레쉬트’로표기되어 있고 ‘천지창조의 시작점’을 의미하며 먼저 우주와 은하계를 창조하시고 지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1:1의 태초는 헬라어 원어의 '엔아르케'로 표기되어 있고 '영원부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천지 창조 이전부터 영원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1:1절~4절을 보면 말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데 이 말씀은 성경을 상고하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도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이라는 단어와 ‘그’라는 단어를 예수님으로 바꿔서 읽어 보면 이 ‘말씀’을 이해하기 쉽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요 빛이요 생명이십니다. 직접 창조하신 세상에 오셨으나 알지 못했고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으나 구원의 참 빛 되신 예수님을 누구든지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 1:11~12).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주님을 통해서 받는 구원. 그 구원의 영광은 놀랍도록 큰 영광이며 구원을 받을 때 주님께서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채워 주십니다. 구원을 받을 때 진리가 없이 은혜만 있다면 구원받고 자유롭게 자기 뜻대로만 살아도 되는 것처럼 착각해서 잘못된 믿음에 빠질 수 있고, 은혜 없이 진리만 있다면 행위로 진리를 따라야 될 것처럼 율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죄 사함 뿐만 아니라 믿고 구원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거룩한 성도로 불러 주시고 생명책에 기록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 소망을 갖도록 해주시는 겹겹이 쌓이고 또 쌓이도록 하는 은혜 위에 은혜인 것입니다(요 1:14,16). 예수님만이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며 죄의 속박에서 자유 함을 주십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Amazing Grace ]’의 작사가인 존 뉴튼은 악질적인 노예상인으로 타고 있던 배가 풍랑이 심하게 일어 죽게 되었을 때 어렸을 적 보았던 성경이 생각나 찾은 성경에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노예라(요8:34).’
는 말씀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말미에 있는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6참조).’는 말씀으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으며 후에 목사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했다고 합니다.
주 전 700여 년 전에 예수님의 구속을 말한 구약말씀(사 53:2~5)이 신약(요 19:30)에서 다 이루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뿐이며 복음을 통한 한 사람의 구원은 온 집안을 구원 하도록 역사합니다(행 4:2, 16:31). 구원을 받기위해 주의 이름을 부르되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간절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행 2:21).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삭개오가 나무에 올랐던 모습(눅 19:2~6)과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다른 이의 이목을 피해서 밤에 예수님을 구원에 대해 묻기 위해 찾았던 모습(요 3:1~2) 처럼 구원에 대한 간절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하고 거듭나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육적으로 죽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요 3:6~7). 거듭난 생명은 죄에 얽매이지 않는 참된 자유를 얻습니다(요 3:32). 주님이 원하는 것은 주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의로 옷 입혀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그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지 않으신 분들은 복음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참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