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하나님 앞에 구하는 자-야마모리(성도교제) [2012/11/21]

관리자 0 1,224 2017.01.28 05:53
2012.11.18
 
 
하나님 앞에 구하는 자
                                                                                                                                     야마모리
 
 
부흥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3번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첫날은 부흥에 관해서 구약에서 교제 했습니다 ,그것은 느혜미야와 에스라 시대에 관한 것.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서 함께 나오는 것, 이 사건이야 말로 상상을 초월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예레미야가 말씀을 드리면서 주님 앞에서 우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삶을 살았나.
 
한국의 유명한 조용기 목사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70만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일본에 와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1980년 경 이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사이에 일본사람이 천만 명이 구원받는다는 약속. 그 이야기가 여전히 문서에 남아있음 그이후로 30년이 흐름. 그 말대로 천만 명이 구원받지 못하고 만 명도 구원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약속이 누구에게 약속한 것입니까 그 약속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과하신 약속을 결코 파기하지 않습니다. 예언자가 예언합니다. 그러나 대게 그 예언한 말이 성취되는 것은 60`70퍼센트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신명기 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은 100퍼센트 성취됩니다.
성경이 말한 것이 성취되지 않는 다면 거짓 성경입니다. 6080이뤄진다고 하는 사람들, 그것은 성령을 통해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령을 통해 말씀하는 것과는 관계없는 허황된 것, 오순절 이와 같은 기적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님,. 성령이 하신 말씀은 틀림이 없음.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케톨릭 일반교파 이와 같은 사람 그리고 마침내는 기민카에 운동이라고 하는 세속적인 연합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세상의 마지막을 위해서 카리스마적인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세워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모든 것이 악령에 의한 것. 물론 그 가운데 구원받은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해서만은 안 됨. 그러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일어나는 부흥입니다. 세 가지 부분에 관해서 부흥에 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부흥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한 그릇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릇을 선택하십니다. 먼저 사도행전19장을 보겠습니다. 15절부터 20절까지 이광경은 에베소에서 일어남, 사역이 일어남, 놀라운 역사를 통해 병자가 고침을 받고, 또한 악령이 쫓겨나고 이 광경을 본 바울을 흉내 냅니다. 바울이 섬기는 하나님을 통해 나가라 소리칩니다. 그때 악령이 말하길 나는 바울도 알고 하나님도 아는데 넌 누구냐. 그에게 대들어서 상처를 냄, 마침내 그는 벗은 몸으로 나가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시다. 헛된 삶을 사는 것에 자책을 느낌,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월을 보냄,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집에 두고 있었다. 나의 이 허황된 삶을 사는 것을 보았을 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나 허황된 것을 모두 가져와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죄인 된 모든 것을 불태워버림, 신앙 믿음 마음에 부흥입니다.
두 번째 성경말씀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한 정직한 삶을 사는 것, 세 번째 자기 지역 모든 주위에 말씀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놀랍게 흥왕해서 점점 말씀이 흥왕해갔다고 말씀이 크게 부흥이 되는 것. 이 부흥은 바울을 통해 일어난 사건 바울은 어떻게 이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이일을 할 수 있음을 알고 그를 선택 바울은 하나님께 사명을 부여받은 것.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졌을 때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확신을 가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이와 같은 것을 많은 시련 박해가 있음, 그는 이모든 시련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았다. 바로 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는 그는 사도행정 19장 20절~24절 바울은 주님을 향한 회계 자기 삶을 드리고자하는 바울은 결심을 했다. 바울은 결코 주님 앞에 참된 회계가 없이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음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바울은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감, 택한 그릇으로서의 자신을 드림, 고린도후서 11장, 여러분 말하기는 쉽다, 매를 맞는 다는 것을 알고도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 확신이 있는 사람 있습니까.
그는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로 가면 매를 맞지 않았을 것,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함, 바울은 그곳에 가면 매 맞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난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가 복음을 전함, 그는 그곳에서 39번이나 채찍을 얻어맞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그곳에 갔습니다.
갈 때마다 모진 채찍이 맞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그곳에 갔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맞는 것입니다. 또 로마 사람들에게 3번 매를 맞습니다. 그는 크나큰 희생을 자처하면서 14절 ~24절 만에 하나 복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하더라고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흥이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 일어나는 것,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마음을 원하고 있다. 바울의 희생적인 마을 봤을 때 우리는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을 자인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야고보서 4장 1절~3절 우리들의 비전 주님 앞에 기도를 하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것을 내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의 기도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고 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된 곳에 쓰이기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 악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응답이 없다. 또 하나는 진심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에 쓰이기,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마음에 완전한 것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부흥이 되기를 원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결코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입니까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 구함이 어디까지 진실성이 있는 가 참으로 하나님을 위해 간구하고 있는가.
구약 이사야서 7장 11절 12절 여기는 예언자, 악한 왕 아하스 그는 우상숭배자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이 아니고 자기 욕심을 위해 사는 자 나라가 심히 어지러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방사람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는 장면을 봅니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연합이 되어 이스라엘을 침범해 들어온 것입니다. 그 위협이 닥쳤을 때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서 널 위해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면 표적을 보여주십시오. 그때 아하스는 기도자체를 거부합니다.
나는 아무리 하나님께 구한다고 해도 그가 이뤄주지 않기 때문에 구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하스가 올바로 보일수도 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징표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바른 생활로 함께 그릇된 것들 우상을 모두 버리는 것, 결코 그 욕망을 버리지 않으면 안됨,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자하는 마음이 없었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신실한 마음을 원하지만 그는 그러한 것들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불 신앙자였기 때문이었을까요
누가복음 14장 25절~34절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 그분은 놀라운 말씀을 전했고 놀라운 것을 행함, 그 때 많은 사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초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마다 많은 사람이 응집하고 그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겠다. 많은 사람이 따름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정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마음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정말로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부모 형제 처를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고는 결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 제자라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의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마음에 자세 결심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내가 그러할까요? 참으로 나는 어떠한가요? 참으로 나는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드리고 지금까지 주님을 섬기고 있나요 우리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침례는 하나님과 함께하겠다는 의미 나는 불신자였던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연합이 되어져 예수님이 부활 하신 것처럼 함께 부활하였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을 때 나의 옛사람은 끝나고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아 이 땅에 살고 있는 것,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삶을 살겠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 주인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를 드리기를 원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부흥이 되기를 원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모임의 비전입니다. 나는 이 비전에 관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 있습니까 물론 없겠죠 어느 영적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부흥이라는 것이 만에 하나 부흥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을 때 그 사람의 참된 기도는 다시는 나에게 부흥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할 것 우리자신을 살필 수 있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일본모임의 특별집회를 준비합니다. 영국형제가 회당이 좁아 회당을 옮기자고 하자 일본의 그리스도인이 이야기합니다. 이 집회장소가 충분합니다. 마침내 특별집회가 시작되자 한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선교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사람의 기본을 그 선교사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선교사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오라고 하자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성도들도 때때로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를 합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하자 그러나 본래는 자기 생명을 내어놓을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을까요. 만약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기도하고 있으면서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다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우리는 본심으로 기도하고 나는 하나님 앞에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부흥을 위해서는 내 모든 것을 내놓아야하기 때문에 부흥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솔직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악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 첫날 나는 부흥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부흥을 위해 어디까지 내어놓을 수 있습니까. 라이오게아 교회 그들은 참으로 예외적인 교회였습니다.
100여 년전 한국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노리마스라고 하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한때에 한국에 와서 선교한 사람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때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교 하였습니다. 손님이 왔을 때 손님을 대접할 돈이 없자 머리를 잘라 팔아서 손님을 접대하였습니다. 노리마스 집에 어떤 사람이 와서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 가보니 두 사람 부부가 기도하는 자세로 기절해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가난한 빈곤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 물질적으로 매우 부요하지만 영적으로는 늘 벌거벗고 눈멀고 소경이 되어 진 심히 연약한 영적모습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더욱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미지근한 신앙은 토해버릴 수밖에 없다는 심한 책망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 속에 하나님 사랑이 있습니다. 첫 번째 토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다시 뜨거운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은 나에게 응답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바로 내 자신이 중심이 아니고 나를 받아들여라 온 세상에 점점 더 연약한 교회는 사라지고 큰 모임은 더 커지고 모두 자기뿐입니다.
자기 자신의 만족입니다. 자기 자신의 필요가 있기 때문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필요 자기 자신의 중심을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릴 수 없습니다.
작년에 캄보디아에 갔을 떄 거기서 연약하신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김명섭 자매를 처음 만났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60이 지났습니다. 여자가 한사람입니다. 매우 가냘픈 매우작고 그런 선교사가 캄보디아에 와서 선교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중심부에 중앙에 학교 마을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일에 인도를 받았습니까? 당신은 지속적으로 독신이었습니까? 그는 이야기하길 저는 사실 이혼했습니다. 저는 독일에 왔을 때 한 남자를 만났고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결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여러 분쟁과 불화가 생겨 그리스도임에도 이혼하였습니다. 그는 이일로 인해 마음에 심히 슬픔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매일매일 죽고 싶다하고 하나님 앞에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살 할 수 없고 하나님 앞에 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저는 죄인이입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십시오. 하나님 저는 결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마음속 깊이 회계하여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는 그 생애 속에서도 마음에 기쁨이 넘치며 매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마음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미지근한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일본 동북쪽에 대지진이 있었고 쓰나미가 있었습니다. 한 목사가 그의 집이 다 떠내려나가고 재앙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는 그와 같은 재앙 속에서도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은 동북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 앞에 꿈을 가지고 미국 뉴욕에 가서 일본의 지진이 일어난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고 큰 쓰나미가 밀려닥치는 모습, 고향사람들이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제발 중단해주십시오. 주님 내 고향을 위해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 회계합니다. 주님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는 회계하며 주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참으로 회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라디오게아 교회를 향해 미지근하다고 말씀하시는 주님, 네가 만일 승리하면 이긴 자의 편에 너를 앉게 하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우편에 앉게 하겠다는 가장 큰 보상이 그를 기다립니다. 이 시대에 바로 부흥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와 같이 회계하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크나큰 보상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거지가 있는데 왕이 지나가자 나에게 은혜를 줄지도 모르겠다하며 기대를 가집니다. 왕의 종이 오자 거지에게 네가 가진 쌀을 달라 그러자 거지가 종에게 쌀을 주며 참으로 치사한 왕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왕은 여섯 개의 금화를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거지가 종에게 내어준 쌀의 량에 대한 비율에 따라 금화를 준 것입니다. 거지가 없는 중에도 좀더 많은 쌀을 내어 줬더라면 금화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이것이면 되겠다고 하며 인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풍요로움을 주기 위해, 성령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회계하며 부흥이 되기를 원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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