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말씀교제

2012/02/26 소망 중에 즐거워하자-차갑술(성도교제)

관리자 0 781 2017.01.23 09:41
2012.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자
차갑술
 
어제 병중에 계신 형제님을 찾아갔을 때도 환영해주시고 반겨주신 김철 노 형제님을 생각합니다. 집 주변에 많은 교회가 있는데 90세가 넘은 연령에도 거리가 멀다하지 않고 노량진에 오심을 보고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전화가 왔는데 내가 지금 노량진역에 와 있는데 걸어갈 힘이 없으니 차를 보내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혼자 올 수 없는 상황에도 힘을 내서 오고 교제하고자 하는 그 열망에 힘이 되었습니다. 수요일에는 사우나에 같이 가자고 하시며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데 어떤 경우에라도 점심 식사를 나눌 때는 식대를 내가 내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형제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소망 가운데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에 대한 감사가 됩니다. 또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수요일에 눈이 많이 왔는데요, 작년에 눈길에 넘어졌지만 간신히 견딜 수 있었는데 오늘은 집에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라는 자매의 말을 듣고 눈길을 걸으며 80년 만에 팔짱끼고 함께 눈길을 걸었습니다. 제가 1등으로 도착한 것이 아니라 먼 거리에서 먼저 도착하신 노 자매님들을 보면서 같이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 큰 감사가 되었습니다. 같은 소망을 품고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게 큰 감사가 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로마서 5장 1절입니다. 화평을 누리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자” 중에서 소망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육체적으로는 권한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마음속에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도님들 간에 화목을 이루는 것을 마음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먼 곳에서 모임을 나오는 것일까요? 이호명 형제님께서는 두 시간 거리가 되는데도 나오십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산상수훈의 팔복 가운데 일곱 번째 복은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20절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과의 화목은 이러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나타나는 작은 자에게 하는 사랑과 같은 것입니다. 내 마음에 서운한 마음과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볼 때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와 화평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그 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어떨까요? 형편없는, 말할 수 없는 추한 자입니다. 하지만 중보자,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놓고 나를 보기에 어여쁘다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나를 형제라고 부르기 부끄럽지 아니하는데 나는 성도님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금년에 어떻게 성도들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것인지요? 어떠한 경우에도 화평을 누리시면서 교제가 이어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금년 주제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가 현실로 되어 지길 바랍니다.
로마서 5장으로 돌아가서 2절을 보시면 은혜로 들어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또한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떠나간 김종만 형제가 암으로 소천 하였는데 암의 고통을 저의 친형을 통해 보았습니다만 불에 데이는 고통보다 더 큰 것을 보았습니다. 병문안 갔을 때 본인이 괴로운데도 그걸 억누르고 찾아간 성도를 꽤 반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자기 앞에 왔는데도 제임스 형제님도 암에 걸린 중에도 성도들을 만나고 교제하였는데 박영신 자매님을 통해 들은 소식은 교제가 끝난 뒤에는 데굴데굴 구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병원에 가게 되면 한국에 있는 성도가 걱정을 하게 된다며 아픔을 견디고 있는 믿음의 간증을 흐려지지 않고 지키는 형제님께 감사함을 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 참 어려운데, 이 즐거움과 기쁨은 하나님을 믿는 그 순간 주어진 기분입니다. 경험의 실제인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소망과 즐거움을 빼앗고 싶은 것이 사탄의 유혹입니다. 우리의 소망의 원천인 그 분께 붙들림 되어졌을 때 소망과 즐거움을 보전할 수 있으며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약속이고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보상과 놀라운 축복을 지속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4~25절 모세의 신앙을 볼 수 있으며 26절에 상 주심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어떻게 주어지고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40절에 보면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교회가 세워졌고 주님이 오실 때 이 교회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 로마서 11장 25절에 보시는 대로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 하여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완성시키는 그 때에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에덴동산에 있지 아니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목표를 두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따라서 이러한 소망을 품고 간직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망이 엉뚱한 곳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인하여야 합니다. 헛된 것으로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소망이 온전히 드려지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늘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5절, 베드로전서 3장 15절을 통해 보시면 알겠지만 소망에 많은 이유를 가지고 답변할 수 있어야 하는 무장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지난 수요일 말씀이 요한복음 2장이었는데 우리 주님의 말씀이 떨어졌을 때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나는 장면을 봅니다. 그 영광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변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사람의 수단과 계산을 넘어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느냐에 따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6장 6~7절에서 웃사가 죽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4장과 함께 보면 언약궤를 옮길 때마다 어깨에 드는 걸 볼 수 있는데 더 편하고자 하여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넘어지는 소에 올리는 걸 볼 수 있을 때 소가 흔들리고 궤에 손을 댔을 때 죽음을 맞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46편 2~5절입니다. 하나님께 소원을 두고 그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가운데 그 소망을 붙들고 나아가고 환란 중에 즐거워할 수 있고 영광 가운데 만나는 주님을 통해 화평이 이루어지는 믿음을 보면서 승리의 삶과 놀라운 결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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