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8.4
그리심산(山)과 에발산(山)
구학모
지난달에 여호수아 1장에서 5장까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그리심산과 에발산이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이스라엘 세겜이라는 곳에 있는 해발 약900m되는 산입니다.
1. 가나안 땅의 전쟁준비
가나안 땅의 전쟁을 위해서 군사를 훈련하고 작전을 짜고 무기와 식량을 확보하는 등 일반적으로 전쟁을 치루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에 ➀네 마음에 말씀을 새겨라(묵상하라) ➁경계선에 있지 말고 요단강을 건너라 ➂요단에서 과거의 모든 잘못된 습관, 불순종 등을 버려라 ➃할례를 행하라 ➄유월절을 지키라 ➅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여호와의 군대장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앞장섰기에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2. 여리고성의 승리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 갈지니라 하시매”(수6:1-5)
여리고성은 높이가 8m 성벽 두께는 6.8m나 되는 즉 대포를 싸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두께였으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수6:2)<과거형 임>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민족에게 넘겨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쟁은 법궤를 맨 제사장들, 양각나팔, 백성들로 승리를 했으며, 나팔을 분 것은 그 땅을 하나님께서 접수했으며, 이제 평화가 왔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3. 여리고성 전쟁의 의미
제사장들이 앞장선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제사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것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민족이 살기 적합하도록 그곳에 살던 자들을 진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을 통해 그곳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부터 잘못된 것을 본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신20:16-18)
4. 아이성의 패배 및 승리
아이성은 정탐군의 보고에 의하면 2,3천명만 가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여리고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이었지만 아간의 범죄로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3천명이 가서 싸우다가 36명이 죽고 그들은 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아간을 아골<괴로움>골짜기에서 처벌하였습니다. 아간이 물건을 도둑질한 것도 죄지만 그보다 더 큰 죄는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보고, 탐내고, 가졌나이다”(수7:21). 또 인류의 첫 조상이 범죄하였을 때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는 말씀과 같이 불신과 탐심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러한 상황에서도 백성들이 기도하고 회개하기를 바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8장에 엎드려야만 할 수 있는 매복, 복병 통해서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실수했을 때 하나님께 엎드려서 진정한 회개와 기도가 필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5. 기생 라합과 아간 그리고 아골골짜기
기생 라합의 가족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수6:25)라는 말대로 그는 아주 천한 기생이었지만 후에 예수님의 계보에 기록되는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마1:5). 그러나, 아간은 유다지파요,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로서 대단한 가문이었지만 범죄함으로 큰 심판을 받고 부끄럽게 죽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수6:24-26)
아골골짜기는 하나님께서 아간의 범죄를 다루셨던 괴로운 장소였으나 그곳은 나중에 풍요한 곳이 되고(사65:10, 소망의 문이 된다(호2:15)고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6. 그리심산과 에발산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신11:26-29). 그리심산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예배를 드렸었고 성전을 세웠던 산이었으며, 영적으로 사람의 생각대로 그리고 하나님께 잘못된 복을 구하는 곳이었으나,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셨던 에발산에는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7. 에발산의 교훈
에발산은 세겜에 있었으며,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 밟은 곳이었으며(창12:5), 야곱이 제단을 쌓은 곳이며(창33:20), 요셉의 해골이 묻힌 곳입니다(수24:32). 여호수아는 저주를 하라는 에발산에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을 쌓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렸습니다(수8:31). 하나님은 제단을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인 에발산에 쌓으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선포하고 번제와 화목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사람은 자기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8. 기브온과 평화조약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신20:10-11)라는 말씀은 신명기 같은 장 16-20의 말씀과 배치되는 듯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믿지 않는 자와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고전9:20)
9. 태양아 달아 머무르라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10:5-14)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달을 머물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싸우셨으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가나안에 살던 족속들과 싸워야 합니다. 가나안의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은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 것처럼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십니다.
11. 맺는 말
순종은 우리가 이루었다는 것, 또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완벽한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도 우리의 지혜가 아니라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입니다. 주님은 부모가 그 자녀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저주를 받을 때도 피할 길을 주시고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