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만물이 바라는 것(로마서 8:19-25)
최병배
로마서 팔장 십구절에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피조물이 갈망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랍니다.
여기서 피조물이라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우주등 모든 피조물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든 피조물들이 갈망는 대상이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을 포함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이와 같이 갈망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지으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렇듯 모든 피조물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만들어졌는데 특히 인간은 영원을 갈망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지면 더 가지려하고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부정부패가 이 끝없는 욕망을 채우려는 헛된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왜 이토록 인간은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원을 갈망하고 찾도록 만드셨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것을 돈으로, 명예로 또는 원하는 무언가로 채우려 하기 때문에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과연 다른 사람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이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과연 앞으로의 미래에는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하여 얼마나 마음을 쏟으며 그것을 알기를 갈망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씀에서는 한 민족도 아니고 세상 전체도 아니고 온 만물들이 모두 갈망하며 관심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니, 바로 구원받은 “나” 자신이라니 참으로 놀라울 따릅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 성도들은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할까요? 누구보다 바로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로마서 8:21)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얼마나 피조물들이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가를 볼 수 있습니다.
온 만물이 간절히 고대하고 바라는 바를 당사자인 우리 인간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다른 피조물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로마서8:23)
이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진정 바라는 바를 너무도 갈망하고 고대하여 탄식하면서 기다린다고 고백하며 그의 간절함이 다른 피조물들 보다 더 한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울 사도는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이 크고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보통 피조물이 아닌 갈망하는 당사자로서의 간절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간절함의 소망은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결과일까요? 과연 우리 몸의 속량은 어떻게 성취될까요? 그 해답은 아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1:7)
그렇습니다 오직 온 만물이 고대하고 갈망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속량으로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받은 구원이 얼마난 놀라운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참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가치는 온 우주가 기다리고 고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로마서8:22,23)
이 말씀을 통해서 이 놀라운 보이지 않는 비밀을 소망을 둔 믿는 자들에게 하는 교훈을 우리는 잘 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결국 이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을 간절히 기다릴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있는 고난과 어려움을 참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다림과 참음입니다. 로마서에서 이 기다림과 참음의 믿음의 증인으로 아브라함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성경에서 그는 아무런 믿을 이유가 없는 것을 오직 희망만을 가지고 믿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나이 많아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과 그의 아내 사라 역시 자녀를 가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모든 불리한 조건을 다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믿음을 놓지 않은 아브라함의 모습이 우리 믿는 성도가 닮아야할 모든 불리함을 알고도 믿을 수 있는 “인지의 믿음”, 긴 시간을 통하여 참고 견뎌야 하는 “의지의 믿음”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눈은 어디를 향하여야 할까요? 인생에서 우리의 관심사와 고대하는 바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나 자신의 관심사, 이 세상의 관심사에 나의 의식이 집중되어야 할까요? 오히려 온 우주와 만물이 바라고 고대하는 바에 우리의 의식을 집중케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너무 크고 놀라워 모든 만물이 고대하며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크고 놀라운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