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실

한국 모임이 걸어온 길 - 영남편 (이만조)

바위섬 0 1,166 2017.02.09 22:13
영남지역 모임의 역사는 지역에 따라 여러 명의 전도자들에 의하여 동시 다발로 일어난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최초의 지역 모임은 거창읍 장팔리에서 시작 되었는데 60年대에 거창고등학교 건축 감리사로 내한하신 맥카피 선교사에 의하여 61년 10월에 세워진 예배당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그후 맥카피 선교사는 경기도 평택 진위 사후동으로 거처를 옮겨서 목장, 학교, 병원, 선교학교를 66年에 시작하여 몇몇 곳에 전도자가 파송되어 모임들이 개척되게 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1960 - 63년까지 대구지역에서 딕 욕 선교사님이 단기선교학교를 통해 권신찬, 유병언, 박옥수, 이종섭, 박태수, 우종억, 김성준 등의 수많은 전도자들을 양성하였고, 복성동, 압곡동, 대구 칠성동, 선산원동, 선산고아, 황산 등지에 복음이 증거되어 모임이 세워졌는데 장팔리에서는 이덕만, 안영수, 선산원동에서는 우종억, 주종학, 이만조, 황산에서는 윤경규, 선산모임에서는 김수영, 문덕무, 군위 복성동에서는 김정곤, 김진곤 등 형제 다수가 60年 初에 구원을 받고 복음의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 대구 중심으로 일어났던 부흥의 불길은 영남지역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60年 후반에는 교리적인 문제로 대구지역 선교학교 출신들은 각자의 교단을 형성하여 오늘날 우리들의 모임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 모든 전도자들이 60年대 후반까지는 매주일 만찬예배를 드렸지만 70年 후반부터는 급격하게 교리가 변하여 신약교회 진리와 교리를 따르지 않음으로 교제의 악수를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유병언, 박옥수, 우종억, 이종섭 등 이분들은 각자의 분별에 따라 독립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있지만 신약교회 진리와 교리를 자신들의 신앙에 맞게 변경하였다.

그들의 교회는 기성 교회와 대동소이하여 모두가 1인 목회 중심의 중앙집중식이다. 교회의 독립성은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성만찬이나 너울이나 자매들이 교회 안에서 잠잠하는 문제나 복수 장로제도는 없으며, 1인 목사제도로 행하고 있기에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모이고 있다. 연대별로 영남모임의 역사를 대충 기록한다면 아래와 같다.

63年: 선산원동 모임에서 이종섭 형제님이 24세의 청년으로 장로교회로 모이고 있는 교회에 와서 복음을 증거하여 모든 성도가 구원받고 침례받아 성만찬 예식을 매주 드리게 되었다.

64年: 선산군 고아면 황산 모임은 역시 장로교회로 있었는데 박태수 형제님이 와서 복음을 전하여 모든 성도가 중생하게 되어 모임이 세워지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3~68年: 선산모임은 장로교회 장로로 계시던 문덕무 형제님과 김수영 형제님이 복음을 깨닫고 김수영 형제님 가정에서 만찬예배를 드리다가 현재 선산모임 예배당 장소를 68年에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0年: 선산에 계시는 김수영 형제님이 구미로 이사하면서 역시 가정에서 시작된 구미교회가 그 후 서구미 교회가 개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72年: 선산모임에 계시던 문덕무 형제님이 대구로 이사하여 가정에서 모이시다가 현재 대구 대봉동 예배당을 짓고 모임이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80年: 연이어 개척된 대명동교회, 남부, 북부, 강북, 동부, 서부, 성서 등 8개의 모임이 현재 모이고 있다.

(부산지역 모임)
70~71年: 부산지역 모임시작은 이덕만 형제님 가정에서 두세 사람이 모이면서 제임스 선교사님이 부산에 내려오셔서 우정고아원에서 모이다가 구덕 김태현 형제님 댁에 이춘원 형제님이 전도자로 오셔서 함께 하다가 장소 문제로 동래 지역에서 동래교회로 모이면서 80年도에 구덕교회와 81年도에 연제, 반여, 북부, 남부, 해운대, 영도, 김해 등 8개의 모임이 개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산의 처음 교회가 우정고아원에서 구덕으로 옮기게 된 사연도 왕중생이 세운 지방교회 문제로 오창명, 이덕만 형제님과 이춘원, 제임스 선교사님이 구덕 모임과 수영 모임으로 나누어지면서 수영 모임에 모이든 분들은 박옥수 목사 교회로 흡수되고 이춘원 형제님은 구덕으로 모임을 옮김으로 현재 동래교회의 시작이 되었으며 부산지역 교회의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이다.

70年대 초에 있었던 지방교회와의 교리적인 문제로 전국의 모임들이 한동안 혼란을 겪었지만 모임을 사랑하고 진리를 수호한 성도와 일군들에 의해서 모임이 든든히 세워질 수 있었다.
74年: 울산에 임종원 형제님은 현재 울산 중부교회를 개척하였고, 이후에 남부, 동울산, 북부 등의 4개의 모임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84年도에 임종원 형제님이 거제도에 거제모임을 개척하게 되어 현재까지 거제모임이 주 안에서 복음진리를 잘 수호하고 있는 모임이 되었다.

80年: 포항의 원영만, 현상렬 형제님이 가정에서 6명의 성도와 함께 모임을 이루었고, 포항남부, 안강 모임이 개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0년도에 동래에 계시던 나수영 형제님과 안하영 형제님은 마산모임을 개척하였고, 후에 창원과 진해모임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후 나수영 형제님은 서울 모래내 모임을 개척하기 위해 마산을 떠났다. 현재 영남에는 45개의 지역교회가 세워져 있으며 모임마다 시작한 년대가 다르고, 또한 일군들이 많이 있지만, 이 지면을 통해서 이 모든 지역교회를 다룰 수는 없었다.

모든 지역교회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다 확보하지 못했고, 비록 다 확보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이것은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모임의 비중이 가볍거나, 또는 무시해서가 아니라 영남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그 역사의 시초가 약간은 특이한 면들이 있기에 그러한 부분에 비중을 두고 기록하다 보니까 생략된 모임이 있었기에 양해를 구한다. 모든 지역교회는 주님에게 또한 성도에게 존귀하며 등한히 취급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지면은 그러한 비중문제 보다는 모임이 걸어온 길 중에 우리가 알아야 될 부분만 기록하였다.

끝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각 지역 모임을 통하여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약교회 진리와 교리에 충실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각 지역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다수의 장로들에 의해 분담목회가 이루어진다면 교회의 혼란과 분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며, 성직제도나 1인목회에 의한 지배구조는 배척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시대뿐 아니라 2세, 3세의 우리자녀들이 오늘의 지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도 신약교회 원리를 충실히 따르는 계기를 마련하여 역사에 부끄러움이 되지 않으리라 믿는 바이다.

이 만 조(부산연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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