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실

한국모임이 걸어온길 - 거창 장팔리 교회

바위섬 0 1,145 2017.02.09 22:17
거창 장팔리 교회
 
우리나라의 복음이 시작되던 부평모임 과 함께 한국최초로 미국 맥카피 선교사에 의해서 영남지방에서 제일 먼저 복음이 전해진 경남거창 장팔리 모임에 대한 기록을 2005년 4월 김제 만경에서 전국 장로수양회에 참석한 초창기 거창 장팔리 모임에서 구원받은 염일부 형제님과 지금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거창 장팔리 모임을 돌보며 섬기고 계시는 안영수 형제님 두 분에게 그간에 상황을 알아보고 그 역사를 간추려 정리하게 되었다

거창 장팔리 모임은 1960년 건축 감리사이던 미국 맥카피 선교사 형제님께서 호주의 선교사 들이 거창고등학교를 짓고 후원하던 학교를 당시 이사장이던 원경선 장로와 교장이던 전영창 선생님에게 미국의 탐슨이라는 형제님께서 새 건물을 지어주는데 이 일에 건축 감리사였던 맥카피 선교사 형제님께서 새로운 건축을 감독하면서 학교에서 모임을 갖던 중 당시 학교 관계자들과 교회진 문제로 어려움이 생겨 학교에서 모이던 모임을 그만두고 거창 장팔리에 하천부지를 불하받아 그 곳에 예배당을 짓고 주님이 가르치신 교회진리를 따라서 성경의 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 거창 장팔리 교회가 되었다.

예배당이 지어지기 전 가정 집회 때부터 이덕만 형제님(현재 대구성서교회) 최정우 형제(현재안성모임)등 여러 형제들이 같이 모였다.

당시 맥카피 선교사는 가지리에 농장을 운영하며 이덕만 ,박만수,서창명 청년들이 그 농장에서 일하면서 맥카피 선교사 형제님이 성경을 가르치고 장팔리 청년들도 그때 같이 가지리 농장에 다니면서 성경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맥카피 선교사와 함께 하던 염일부 형제님도 62년 8월15일에 거창에서 구원받고 침례를 받기에 이른다. 또한 자매들로는 이학순(서울강북교회) 정필조 (대구성서교회)정영희 (안영수 형제님 자매님), 이외자(서울구로교회),조경애 자매들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안영수 형제님은 당시 22세의 청년이었다.

함께 모이던 박영교 씨가 수건 쓰는 문제로 이견이 생겨 서울로 올라가 홀트 양자회 총무를 하다가 기독동신회 회장을 역임하며 활동하였다. 맥카피 선교사 형제님은 농촌계몽에도 앞장서 젖소를 도입하여 키우는 등 축산사업에도 앞장섰고, 당시에 시골에는 흙 돼지 뿐 이었는데, 잘 크는 흰색돼지를 도입하여 보급하여 농촌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하고 토양검사를 하는 기계를 구입하여 농촌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서 당시 경남 도지사 이던 양찬우 씨가 직접 찾아와서 격려하는 등 농촌의 농민들에게 큰 유익을 주었다.

1962년 5월에 영국 웨일즈 에서 제임스 선교사 형제님이 내한하여 몇 개월간 거창에서 맥카피 선교사와 동역을 하시다가 서울로 올라 가시고 맥카피 선교사도 다음해인 1963년에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동천리 사후동으로 옮기셔서 그 곳에서도 농촌 계몽활동과 의료 선교를 하시면서 전국에서 젊은 그리스도인 청년들을 불러 성경을 가르쳐서 전도를 내보내는 등 전도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그때 사후동 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농촌계몽차원에서 발육이 느린 흙 돼지만 키우던 마을사람들에게 성장 발육이 좋은 흰 돼지 새끼를 분양해주었더니 아주 열심히 사람들이 교회에 나왔는데 그중한사람이 6개월간 열심히 잘나오더니 그만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갔더니 아니 돼지새끼 한 마리 가져와서 6개월이나 나가 주었으면 됐지 얼마나 더나오라는 것이요? 하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듣고 기가 막혀 할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선교국으로 발전하였지만 우리선교사들도 세계도처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맥카피 선교사는 사후동 에서 선교사역을 하시면서 젊은 청년들을 가르쳐서 전국으로 내보내 전도하고 제임스선교사는 그런 전도자들의 전도지역을 순회하시면서 교회진리를 가르치는 등 두 분 의 동역으로 한국지역교회에 많은 영적부흥이 일어나고 복음이 전해지는 특별한 동역이 1970년대와 80년대 초까지 계속 돼었다.

맥카피 선교사의 선교지역을 사후동 으로 옮긴 후에 거창 장팔리 교회는 선산이 고향인 19세의 청년 박옥수 형제가 (지금은 예수교 복음침례회대표)1963년 거창 장팔리 에서 복음 전도사역을 하던 때에 지금 거창 장팔리 교회에서 사역을 하시는 안영수 형제님이 1965년 5월8일 전도자 박옥수 형제님과 교제가운데서 히브리서 10장 9절로 18절에서 복음을 확증하게 되었다.

특히 10장10절의 이 뜻을 좇아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었노라 는 말씀을 듣고 요한복음 5장24절에서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노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는 말씀을 통하여 확실하게 주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되어 운동과 패싸움으로 소문난 청년 안영수가 구원받고

오늘의 전도자가 되어 거짓 교리와 진리를 가지고 와서 예배당을 빼앗으려하던 왕중생-지방교회 무리들에게서 예배당도 지키고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고향에서 힘쓰고 있다.

그러던 1965년10월 17일에 이덕만 형제님이 군에 입대하고 곧이어 11월 30일에 박옥수형제님도 거창전도 3년 만에 군에 입대하니 모임은 심히 어렵게 되었으며 안영수 형제님도 같은 달에 입영영장이 나와서 입영했다가 고혈압 증상이 있어 집에 내려와 주님을 섬기며 지내는 중에 1965년 12월에 지금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계시는 김제화 형제님께서 내려와서 1년 정도 계시다가 떠나시고 1966년에 故 박태수 형제님이 오셔서 모임을 돌보던 67년 2월에 안영수 형제님은 재 입영을 하게 되어 다시 군에 입대하게 되어 69년11월29일에 전역하여 지금까지 거창 장팔리 모임을 떠나지 않고 섬기고 계신다.

한편 故 박태수 형제님은 4년간 모임을 돌보며 전도하시다가 1970년 1월2일에 부평모임과 선한사마리아원의 일을 돌보기 위해 인천으로 가시게 되었다.

그때부터 장팔리 모임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안영수 형제님과 젊은 청년형제들이 중심 이 되어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는데 1972년 1월 1일부터 5일까지 중국에서 온 왕중생 워치만니 의 제자라는 분을 모시고 특별집회를 하여 외형적으로는 활력이 있었으나 말씀의 가르침이 잘못되어 모임에 분열이 일어나고 모임식구들은 둘로 나누어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1971년 3월31일에 같은 모임의 정영희 자매님과 결혼한 안영수 형제님은 건축회사에 근무하면서 모임을 돌보고 있었는데 1972년 가을에 왕중생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거창 장팔리 예배당을 점거하고 장팔리 집회소라고 간판을 바꾸어 다는 등 예배당을 통째로 빼앗으려는 못된 일을 시도하며 행패를 부려서 이것을 저지하고 지키려는 안영수 형제님과 소수의 형제들과 밀고 당기는 어려움 있었고 그들은 예배당을 빼앗지 못하자 수십 장의 유리창을 파손하는 등 갖은 행패를 부리기도 하였지만 안영수 형제님과 남은 형제들이 이를 지키고 1973년 에는 안영수 형제님이 다니던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전심으로 모임을 돌보는 일과 복음전도에 전염하고 부인 정영희 자매님께서 양장점(정원양장점)을 경영하면서 자비량하고 거창 장팔리 교회를 섬기던 70년대 전국적으로 모임이 별로 많지 않던 때라 필자가 진도에서 어렵게 전도하며 섬기던 때에 형제님과 교류가 잦았고 74년 7월의 한여름에 필자가 거창모임을 방문하였을 때에 형제님은 젖 짜는 양을 사육하시면서 아침마다 양 젖을 짜서 배달하시면서 복음 사역을 하고 계셨다.

형제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비량하시면서 모임과 가정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계신다. 지금은 더구나 농촌 소읍에 사람이 없어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 살림과 가정살림을 책임져야하는 이중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시면서 남모르게 어려운 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평생에 모임 진리와 장팔리 교회를 지키고 계신다.

장팔리 모임의 출신으로는 지금 서울강북에서 주님을 섬기며 복음사역을 하시는 염일부 형제님과 이학순 자매님 부부, 대구성서교회의 정인택 형제님 과 이덕만 형제님과 정필조 자매님 부부 서울구로교회의 이외자 자매님들이 거창 장팔리 모임의 역사적 증인으로 지금도 모임 안에서 주님을 섬기고 계신다.

그 외에도 지금은 다른 길로 가고 있는 부평교회 강봉기 형제를 비롯하여 정쌍영 형제(현재 대구대명동모임) 손영선 자매(현재 김천모임) 등이 있다.

예전에는 거창군이 큰 읍이었으나 지금은 인구 5만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장팔리 교회를 통해 계속 주님의 이름이 선전되기를  주님 안에서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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