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실

한국 모임이 걸어온길 3 [지복흥]

바위섬 0 1,112 2017.02.02 12:24

대구지역


1963년 여름 대구지역에 주님의 큰 역사로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은 사실을 보고 제임스 선교사와 유강식 형제님이 함께 다녀왔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제임스 선교사는 유강식 형제님과 함께 대구에 내려가 성경적인 교회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만찬예배와 자매님들이 교회에서 잠잠할 것과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 등등을 가르쳐 줬을 때 모두가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따르는 것을 보고 돌아와 굉장히 기뻐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감사한 것은 대구 선교훈련원 출신으로서 주님 안에서 교제를 계속해온 박태수 형제님(召天, 전 부평모임 사역자)그의 부인인 최경희 자매님(현 인천 연수모임), 그리고 1970년 초까지 선산에 계셨던 문덕무 형제님(召天, 대구 대봉동모임 사역자), 김수영 형제님(현 구미모임 사역자), 이만조 형제님(부산 연제모임 사역자), 이석조 형제님(선산모임 장로), 최경낙 형제님(선산모임 장로), 강정우 형제님(선산 연수모임 장로), 최종문 형제님(召天, 서구미 모임 장로), 김윤분 자매님(현 대구대명동 모임), 그 외 신실한 형제·자매 여러분이 말씀의 진리를 따라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볼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형천막집회

1965년 봄에 제임스 선교사는 대형 천막을 제작하여 상도동에서 약 10일간 저녁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노량진 형제·자매들은 물론 통역과 봉사로 도와 동역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아일랜드에서 도착한 컥 선교사도 참석하여 도왔습니다. 천막근처에서 장난치고 노는 아이들이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며 천막에 돌을 던지기도 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큰 방해가 되어 걱정이었는데 컥 선교사가 캄캄한 밤 밖에서 아이들이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파수꾼 노릇을 해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밤 집회에 나왔던 모녀가 첫날 밤 구원을 쉽게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교파 교회생활을 하던 중 율법에 매여 있었지만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무거운 멍에를 벗고 기쁨으로 모임에 더해졌습니다. 그 모친은 이옥희 자매님(현 캐나다의 뱅쿠버모임)이고, 그의 따님은 정신숙 자매님(켈거리모임)입니다. 얼마 후 중학생인 정형모 형제님(뉴저지모임 사역자)도 구원을 받아 그 가정은 연달아 가족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대형천막집회는 상도동 다음에 삼양동에서, 신림동에서, 영등포 경찰서 자리에서도 있었습니다. 최인근, 이성운 성도부부가(현 노량진모임) 사는 동네인 궁정동에서 천막집회를 가졌습니다. 그 때 바로 최인근 형제님 옆집에 사시는 박순열 자매님(구로모임)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일학교

모임의 어린이 주일학교는 노량진 모임 장소인 삼중의원 2층이었는데 이면 도로치고는 대로변 옆이고 현 노량진시장에 위치하여 근처가 주택지이므로 많은 아이들이 모였던 풍성한 주일학교였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는 이종경 형제님(얼마 전 召天, 세크라멘토 모임장로)과 장영자 자매님외 소수가 담당하였습니다.

학생 중에 엄명순 학생과(전 불광동모임 현 캘리포니아거주), 신경숙(L.A거주), 계경자 자매님(원주모임)등 세 학생이 구원을 받으므로 부모와 형제들을 인도하는 계기가 되어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의 내한

전호에서 선교사와 가족들의 사진을 보신대로 1966년에 엠마오 성경학교(서울) 운영을 위해 원 던함, 롤라, 화이자 선교사 세 가정이 내한하여 모임에 더해졌습니다. 11월에 이수원(현 북부모임)선교사가 사후동으로 와서 현지에서 언어를 배워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존 앤더슨부부(아일랜드), 폭스부부와 자녀들(영국), 훼리스 부부와 딸(미국), 그 후에 바-선교사 가족(아일랜드)이 더해져서 만찬예배 때는 풍성한…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넘치는 예배와 말씀의 교제며 성도의 사귐을 통하여 형제의 사랑을 만끽하는 체험들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애찬을 만들 장소도 없고 경험도 없고 해서 일단 집으로 돌아가 좀 쉬고 저녁 전도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보통의 예인데, 집이 먼 형제·자매님들은 제임스 선교사 또는 컥 선교사 댁으로 가서 대개 라면으로 점심대접을 받고 종일 교제를 나누고, 또 저녁식사 대접을 받은 후에 저녁복음집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녁집회는 조금 일찍 와서 노방에서 찬송을 하며, 전도지를 배포하며, 간단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모두들 처음사랑에 넘치는 형제·자매들이었습니다.

세 자매님

1966년은 세 자매님들이 구원을 받아 더해지므로 모임은 활력을 얻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66년 1월 극동방송 청취자 제 1회 수양회를 불광동 수양관에서 개최하였습니다. 극동방송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은 총무인 부평모임의 강태훈 형제님입니다. 방송국의 방침은 초교파적으로 운영하여 교파의식이 적었으며 모임의 형제·자매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방송국에서 청취자 1회 수양회를 서울 불광동에서 가지므로 최재준 형제님과 지복흥 형제가 참석하였는데 다른 참석자와 다른 점은 모두가 영혼의 심령이 평강이 없어서 구원을 얻어 보려고 왔지만 저희 둘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뿐 아니라 모임으로 인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참석하여보니 방송 메시지를 열심히 듣는 분들이 심령이 메말라 복음을 듣고 믿고 저 하는 사람은 손을 들고 나오라고 할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앞자리로 나왔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은 이정인 학생(당시 서울 교대생)과 김종호 자매님이었습니다. 개인상담을 통해서 두 사람은 더욱 구원을 확신하게 되어 모임으로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얼마 후에 이정인 자매님은 친구인 박은영 자매님(송찬호 형제님의 부인)을 노량진 모임으로 인도하여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김종호 자매님은 고향인 충북 괴산군에 감리교가 있었는데 교역자가 없고 집이 허물어져 영혼들이 모이지를 못하였는데 사후동 모임의 유천희 형제님을 요청하여 복음을 전해주실 것을 부탁하고 청년 유천희 형제님은 그곳에 가서 예배당을 개축하여 복음을 전하고 모이기 시작하여, 그 동네 청년인 심병혁 형제님(召天, 대전 동부모임 사역자)과 동역을 하였습니다. 최봉출 형제님(대전 내동모임 장로)도 잠시 동안 동역을 하다가 얼마 후 사후동으로 훈련 차 떠났습니다.

큰 물고기

1967년은 한혜동, 송찬호, 김우종 세형제님이 침례를 받고 모임에 더해지는 해였습니다.
한혜동 형제님은(현 구로모임 사역자)구원은 일찌기(65년도) 받았으나 전에 나가던 교회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수요 집회는 노량진모임에 나와 교제를 나누고 주일은 본 교회에 나가다가 어떠한 계기가 되어 67년에 침례를 받고 정식으로 모임에 더해졌습니다.

송찬호 형제님은(서대문모임 사역자)일찌기 일반교회에서 몸담고 있던 중 같은 학교에 봉직하고 있던 이정인 자매님(왕십리모임 사역자인 최재준 형제님 부인)을 통해서 노량진모임으로 인도를 받아 더해졌습니다.

김우종 형제님(제주 남문모임 사역자)은 엠마오를 통해서 노량진 모임으로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굉장히 핍박이 심한 가정이었습니다. 후에 모친이 먼저 구원을 받으시고 부친인 김영원 형제님(현 수원중부모임)과 동생 부부가 노량진 모임에서 모두 구원을 받고 현재는 함께 병점에서 수원중부모임에 속하여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후동 훈련원

1966년 각 지역에서 구원을 받은 형제 자매님들을 영적으로 양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침식을 제공하며 무료로 성경을 가르칠 목적으로 훈련원을 평택군 진위면 사후동에 맥카피 선교사가 운영하는 목장 바로 옆에 설립하여 사후동에서 가르쳤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는 자주 내려가서 맥카피 선교사를 도와 말씀을 전했습니다.

훈련생 중에는 고향인 선산에서 구원을 받고 함께한 서명수 형제님(중국선교사)과 조병헌 형제님(전 수원 중부교회 사역자), 김정곤 형제님(召天, 평촌모임 사역자), 배영호 형제님(전 수부 모임 사역자), 이만조 형제님(부산연제 모임 사역자), 권외순 자매님(오산 모임), 곽영기 자매님(오산 모임) 등 다수가 훈련원 1기생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훈련과정은 전도여행을 끝으로 모든 과정이 마쳐지는 것입니다.

전도여행을 떠난 형제님들 중 세 분의 경우를 말씀드린다면 서명수 형제님은 1967년 4월에 사후동을 떠나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전도지를 한 보따리 메고 땅 끝이라 할 수 있는 진도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타고 진도에서 끝 쪽인 백동리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결과 큰 역사가 일어나 혼자서는 감당키 어려워 함께 훈련을 받은 이만조 형제님을 요청하여 동역을 하고 그에게 맡기고 돌아왔으며 이만조 형제님은 그곳에 머물며 제임스 선교사와 박준형 형제님을 초청하고 그들은 내려와 복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도운 사실은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훈련원 2기생인 신명희 형제님은 다음해인 1968년도에 최남단인 추자도에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금도로 인도를 받아 대부분 청소년들을 상대로 전도하여 큰 역사가 일어나 비금모임이 서도록 인도하였습니다.

훈련원의 맥카피 선교사의 방침은 그의 성격을 반영하는 대로 전도여행을 떠나되, 편도여비만 주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2000년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한대로(마 10:9-14) 전도지에 가서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 머물라 한 말씀대로 영접을 받으면서 전도를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계속하고 만일의 경우 전도지에 가서 영접도 못 받고, 머물기도 어려운 형편일 때에는 연락을 하면 돌아올 여비를 부쳐주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어느 형제님은 강원도 두메산골로 전도여행을 떠났으나 머물 곳도 없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여인숙에 들어가 송금을 받을 때까지 머물다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참 흥미로운 추억이기도 합니다.

성경 강습회

1960대도 다 저물어가는 1969년 12월에 지방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요청에 의하여 상도동 국민주택 23호 제임스 선교사 집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함께 침식하며 요한계시록 강해만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복흥 형제는 가까이 위치한 집에서 다녔습니다. 강사는 제임스 선교사였고 통역은 주로 서창식 형제님(미국에서 소천)이 했고, 전영주 자매는 서창식 형제님이 부재중에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19장까지 하루에 5시간 내지 7시간 정도 강습을 받았습니다.

수강생은 서명수 형제님, 김정곤 형제님, 이만조 형제님, 지복흥 형제님, 권외순 자매님, 곽영기 자매님, 이수원 자매님(용인모임 백낙현 형제님 부인) 등이었습니다.

제임스 선교사의 제 일성(一聲)은 요한계시록 공부를 잘하려면 계시록 1장 19절을 세 구분으로 된, 1. 네 본 것, 2. 이제 있는 일과 3. 장차 될 일,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본 것”은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사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아 환상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금 촛대 사이에서 거니시는 주님을 본 1장의 내용이며, “이제 있는 일”은 ,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의 모습과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며, “장차 될 일”은 4장 이후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즉, 교회 휴거 후에 일어나는 사건인 7년 환난과, 19장에 등장하는 혼인잔치와 거짓선지자와 짐승인 적그리스도의 멸망까지를 상세하게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믿음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는 침식을 제공하면서 은혜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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