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소식

주님이 쓰신 작은 그릇 [곽경덕 2012/04/05]

관리자 0 597 2017.01.27 16:52

주님이 쓰신 작은 그릇.

캄보디아에서 17년간 주님이 인도하신 간증을 “주님께서 쓰신 작은 그릇”이란 제목으로 써 봅니다.
오직 주님만이 영광 받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저희 가족을 선교의 길로 인도하셨을 때는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과연 우리를 부르심이 확실한지 먼저 알고 싶었습니다. 김천교회 개척도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국내도 아니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복음 전하는 일이 부담스러웠을뿐더러 선교사훈련도 받지 않았고 영어도 잘 못하는 저희에게 보여주신 해외 선교는 뜻밖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엎드려 눈물로 간절히 구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에 불가능이 없으신 주님께서는 저희 기도에 확실한 말씀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롐 33:2~3) 결국 1994년 7월 19일 김천 교회에서 준비한 선교사 파송식에서 각 지역 교회에서 오신 성도님들의 뜨거운 사랑과 기도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희가 섬기던 김천 교회는 주님께 맡기고 선교지에서 필요한 물품만 간단히 정리한 짐을 가지고 저희 가족은 오직 주님의 말씀만 믿고 크고 비밀한 일을 기대하며, 선교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생전 처음 외국 땅을 밟으며 미지의 세계로, 꿈만 같은 시간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에 대한 지식이라곤 1975년 내전 탓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몹시 가난한 나라라는 사실 외에는 별로 아는 게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너무 무더워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고 공항 활주로는 모두 황토처럼 붉은 돌가루였고 건물도 너무나 허술하여 버스 정류장 같았습니다. 마른 체구에 허름한 군복을 입은 군인이 긴 총과 총알이 줄줄이 매달린 것을 어깨에 메고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검게 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도장을 찍은 종이를 비자라고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 나라가 얼마나 가난한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60년대 초기를 연상케 했습니다. 우리는 캄보디아 말을 배우면서 차츰 이 민족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람들도 사귀면서 적응해갔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간호하였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일주일 만에 점차 회복되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선교지의 병원 사정은 너무나 열악해 잘 못하면 의사가 사람을 죽이기도 해 주님만 의지하고 기도했는데 치료해 주셨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계절이 좋은지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다가 이곳에 와 보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건기와 우기 두 계절뿐이고 항상 더워 모기와 더위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밤에는 총소리에 잠을 설치곤 하면서 선교지에 왔음을 실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 천국을 버리고 오셔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음을 생각하면서 그 크신 은혜를 좀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서 이 민족이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불교를 믿으며 우상을 숭배했고 후손들에게 계속 대물림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단의 종노릇하고 있는 이 민족에게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인들은 대부분 마음속에 잦은 전쟁으로 말미암은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9:35~37)”라는 말씀이 이들을 두고 하신 말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유럽 종교로 여기고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아주 꺼려 어떻게 이들에게 다가가야 할지 기도와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자녀 교육을 기도하면서 현지 학교와 외국인 학교 중 결정해야 했을 때 가족회의를 열고 어렵더라도 현지 학교에 가기로 함께 결정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 꼬맹이들과 같이 공부하게 된 큰아이를 볼 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희 자녀도 모두 주님 것이기에 주님께서 아이들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뜻이 이루어지기 원했고 다만 인내하며 순종하는 아이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기도했고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면 주님께 아뢰면서 혼자서 몰래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126:5~6) 캄보디아 사정이 조금씩 나아가고 우리나라 대사관도 생겨 우리가 전도할 발판인 기술학교도 세워 열심히 가르치고 전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나 쌀과 라면이 동나면서 불안이 고조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상이 두 명으로 당파 간 갈등과 잦은 분쟁이 내전을 일으킬 조짐이 보이다 결국 1997년 7월 5일, 공항이 폐쇄되고 시장과 상점들도 문을 닫고 점점 총소리가 들리더니 주위 사람들이 오토바이에 짐을 가득 싣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우리에게도 빨리 피난 가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떠날 수 없었고 여기서 죽을지라도 머물고자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총소리가 요란하고 밤에는 대포 소리도 아주 크게 들렸으며 빨간 불빛이 검은 연기와 함께 치솟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전화도 끊기고 집 밖을 나갈 수 없게 되자 온 가족이 모여 기도하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불안하거나 무섭지 않고 마음은 평화로웠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사 속히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내전은 끝나 피난 갔던 동네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차츰 안정되면서 우리 기술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현지 말을 배울 때는 고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기도하면서 고아원을 열심히 찾아가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이며 사귀고 전도하기도 했었으나 주님께서는 교육선교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16:9)
그동안 가나안 기술학교를 통하여 수천 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우리 주님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피난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현지인들에게 좋게 인식된 후부터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드디어 캄보디아에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얼마나 놀라운지요! 주님께서는 부족하고 작은 자들을 캄보디아로 이끄셔서 수천 명의 캄보디아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네 교회를 열매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현지 성도가 늘어나면서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가 생겼고 어려움은 더 많았습니다. 청년 성도들이 결혼하게 되면 너무 가난한지라 우리에게 호소합니다. 건강이 연약한 성도들이 많아 몸이 아프면 우리에게 옵니다. 시골 청년들이 프놈펜으로 오면 의식주 해결을 돕고 직장도 알선해 줘야 합니다. 우리가 섬긴 사람들이 모두 주님을 잘 섬기면, 시련도 기쁨이 되겠지만, 많은 이가 우리 곁을 떠나 다시 죄악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한 시련을 어찌 다 적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선교하면서 겪었던 추위, 배고픔, 목숨의 위험, 거짓 형제를 통한 시련과 배반 같은 아픔과 시련을 다 기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와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은 정말 영광스럽기에 오늘도 주님만 바라봅니다. (롬8:17) 현지인 일꾼 얻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요! 어떤 청년은 몇 년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말씀으로 가르치고 돕고 섬겼는데 어느 한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버릴 때는 실망이 너무 커 잠도 못 자고 며칠 동안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물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들을 섬겼지만, 그들은 우리 마음을 이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아 힘이 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신 말씀을 생각하며 그들이 어찌할지라도 여전히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2000년도에 접어들면서 캄보디아에는 급속한 변화가 일어 젊은 청년들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여러 가지 나쁜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여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 없이 어려운 일이 생기고 있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래도 오직 복음만이 이 민족이 살 길이므로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주님께서는 오랫동안 기도하던 기독교 학교를 시작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저희 딸도 주님 일꾼으로 부르시고 훈련하셔서 함께 일할 수 있게 인도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님께서 선교의 비전을 품고 있던 성실한 형제와 결혼으로 맺어 주셔서 2010년 4월 10일에 성도님들의 축복 가운데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캄보디아에서 교육 선교를 하게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러 가지 일로 남편의 건강이 한계에 이르러 고국에서 치료받기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못다 한 선교 사역은 자녀들에게 맡기고 건강이 회복하는 대로 순회 선교를 할 계획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주님의 크고 작은 역사와 기적을 이 지면에 다 기록할 수 없겠지만, 특히 가나안 기술학교를 건축하게 하신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러 번 죽음 앞에서 건져내 다시 일하게 하시고 엘리야 선지자의 기적처럼 까마귀를 통한 공급도 맛보게 하셨으며 외로울 때 성도님들을 보내셔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던 많은 일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주님의 부르심과 선히 인도하시는 그 뜻을 모른 채 불순종했다면, 어떻게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와 황무지와 같은 이곳에 주님의 교회가 탄생하는 기적을 볼 수 있었을까요? 주님께 향한 단순한 작은 순종을 큰 축복의 아름다운 열매들로 맺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이러한 작은 자를 들어 쓰시는 주님을 생각할 때 깊이 감사하며 끝까지 이 믿음의 경주를 잘할 수 있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동안 고국에 계신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께서 보내주신 뜨거운 기도와 동역에 큰 감사드립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동역이 없었다면, 저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저희가 돌보던 프놈펜의 기술학교와 교회는 아들이 잘 돌보고 있고 기독교 학교와 껌뿡츠낭 교회는 사위와 딸이 감당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노량진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며 치료에 힘쓰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글을 줄입니다.

곽경덕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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