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선진들

에드윈 아더 제임스 (Edwin Arthur James 1912-1988)

바위섬 0 849 2017.02.07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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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아더 제임스
(Edwin Arthur James 1912-1988)

 

  1912년 6월 21일에 오스트랄리아의 퀸스랜드(Queen's Land),마운트 모건(Mt. Morgan)에서 5남5녀중 세번째로 출생한 그는 1920년 영국 웨일즈(Wales)의 뉴포트(Newport)로 이주하였다.  그의 부모가 1907년에 이곳에서 결혼하였으며 1910년에 오스트랄리아로 떠났다가 십년만에 귀향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10세이었던 1922년 가을 참석하고 있던 교회(Mt. Joy Street Gospel Hall)에서 주일학교가 끝난 후 백발 노성도와 함께 지하실에서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진지하면서도 알아 듣기 쉽게 풀어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모셔 들였다.  아울러 출석상으로 여러 차례 선교에 관한 책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선교 수기였던 '식인종 가운데서(In the Heart of Savagedom)'는 그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선교사가 되려는 꿈을 키워 주었다.

  그러나, 그의 꿈과는 달리, 양친은 장남과 장녀의 교육에 힘이 부치게 되자 셋째인 중학교 1학년에서 중단시킬 수밖에 15세 이었던 그는 정육점에서 심부름 하는 소년으로 첫 발을 내디딘 후 갖가지 직업에서 친절과 정성을 다했다. 

 그는 17세 이었던 1929년에 침례를 받은 후 모든 교제에 성실하게 참여하였으며 가르치는 은사가 공인을 받게 되었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감화를 주었다.

  1942년 2월 21일에 그는 오랜 동안의 교제 끝에 스코틀랜드 태생의 자매(Elizabeth Thomson Mackyntire)와 결혼했으나 1945년 2월 17일에 자매가 주님께로 갔다.  그녀는 불치의 간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사랑하였고 결혼했으며 정성을 다해 돌봐 주었던 것이다.  3년도 채 못되는 결혼생활 이후로 그는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소년 시절부터 간직하고 있던 선교에의 일념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동족상잔의 비극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그가 섬기던 교회에서도 전쟁고아들을 돕고 있었으므로 한국에 관한 소식을 듣고 있었다.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 1960년에 일본에서 선교하다가 건강의 악화로 귀국한 라이트(Robert Wright)와 교제하던 중 한국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1962년 3월 17일에 아일랜드에서 여객선(Pacific and Orient Linery Chusan)에 올랐다.

  지루한 여행 끝에 4월 22일, 일본 요꼬하마에 도착하여 당시 일본에서 회사에 근무하던 앤더슨(Robert Anderson)의 집에 체류하다가 문서 선교를 하고 있던 커리(Jim Currey)의 안내로 5월 23일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한국 선교의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는 1959년부터 거창중고등학교 건축 감리차 내한 체류 중이던 매카피(Mccaffee)와 함께 거창에서 전도하다가 8월 12일에 유강식과 함께 상경하여 돈의동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돈의동 교회는 승송에 의해 개척된 교회 중 하나로 박준형 강태훈 서창식 등의 청년들이 전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으나, 이들을 격려하기는커녕 도리어 구실을 붙여 좇아냈다.  할 수 없이 그는 돈의동 교회에서 1962년에 나와 장충동에 있던 자택에서, 63년에는 용산에 있는 노동회관으로, 노량진으로 상도동으로(국민주택 23호) 전전하다가 그 이듬해 4월에 노량진에 있는 삼중의원 2층을 빌려 모이게 되었다.

  그의 선교 초기에는 몹시 궁핍하였다.  선교회의 추천이 없었을 뿐 아니라 연령적으로나 자질면에서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만류했던 터이었으며 두벌 옷이나 두켤레의 신도 과분하게 생각하면서 주위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아낌없이 썼으므로 한국 선교를 결심한 뒤에도 2년간 손수 여비를 마련해야 했고 한국에 와서도 싸구려 백반이나 소금물에 식빵을 적셔 먹기도 했다.  더구나 찌든 가난에 전쟁의 상처도 아물지 않은, 영육간 비참한 상태의 한국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의 내한을 전후하여 훼리스(John, T. Ferris)는 미공군 조종사로 참전하면서 교제하다가 전역한 후 내한했고 컥(Wilbert Kirk 1965), 화이자(Charles Fizer 1966), 던햄(Warren G. Dunham 1966), 롤라(William Roller 1966), 나이스웬더(이수원 Neiswender 1966), 확스(John Fox), 앤더슨(Robert Anderson 1968), 미첼(Steward Mitchell), 바(Wesley Bar)가 속속 내한하여 동참했다.

  그는 전국 각처를 여러 동역자들과 자주 순회하면서 말씀을 따라 침례를 주고 굳세게 가르쳤는데 갓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슬처럼 스며들었다.  끝내 언어에는 유창하지 못했으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친절과 봉사와 헌신은 전혀 고제의 장벽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선교 초기부터 영어 성경반을 통해서도 꾸준히 말씀을 전하여 여러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왔으니 도리어 유익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1970년에는 부산 남성국민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김태헌 부부의 가정에 유숙한 것이 구덕교회를 비롯하여 부산 지역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  1975년 여름에 구로지역에서 천막 전도집회를 마친 후 그 동안 가정집회로 모여오던 성도들과 함께 구로교회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는 손수 제작한 천막과 조립식 의자를 빈터에 이동 설치하여 영등포, 삼양동, 상도동, 구로동, 용두동, 신촌 등 서울 여러 지역과 경인 지역에서 전도 활동을 벌였다.

  그는 그의 헌신적 선교에 감동을 받은 박영신 자매와 1983년 2월 26일 새로나백화점 연경궁에서 결혼하여 여생에 위로를 받았다.  그 후 86년 가을에는 홍콩, 북경, 심양을 경유하여 연길을 방문하면서 조선족들에대한 전도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87년 8월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장암으로 밝혀져 서둘러 귀국하여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소 회복되자 12월에 영국을 방문하였다가 병세가 악화되어 주님의 부르심을 감지하고 주위의 만류를 다시금 뿌리친 채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마지막을 한국에서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듬해 1월 15일 오후 3시 7분 그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그의 아내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의 여동생, 그리고 여러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유언을 따라 그의 장부는 자신과 같은 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구용으로 기증했고 그의 몸은 경기도 평택 수부예배당 맞은 편 언덕에 잠들어 있다.

                                               - 앞서간 형제들에서(엠마오) -

 

  제임스 선교사는 임종 직전에 그가 평소에 사랑했던 구학모 형제를 불러 주님이 자신을 한국에 보내주셔서 주님의 쓰임을 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유언했다. 

 

 제임스(Edwin Arthur James) 유언

 

  1.  나를 대한민국에 보내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  한국에서 임종을 맞게되어서 기쁘며, 나의 장부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기증하고,
       장례는 성도들의 손에 의해서 치루어 달라.

  3.  나의 장례식에 교제가 멀어진 교회와 형제들을 특별히 초청하라.

  4.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 처럼 형제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고 연합하라.

  5.  주님이 오실 때 까지 복음전하는 일과 진리를 굳게 지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라.

  6.  나의 장례식은 노량진교회 주관으로 하라.

  7.  나의 장례식의 사회는 구학모 형제가 하고 나의 유언을 알려달라.

 

 제임스 선교사의 장례는 평소 그를 존경하고 사랑한 성도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988년 1월 19일 노량진교회에서 치루어 졌고, 그의 몸은 수부예배당 맞은 편 언덕에서 부활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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