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선진들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 (Anthony Norris Groves 1795-1853)

바위섬 0 800 2017.02.0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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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
(Anthony Norris Groves 1795-1853)
 

로브스는 1795년에 한츠(Hants)의 뉴톤(Newton)에서 태어났다.  그는 엑세터(Exeter)에서 파겟(Paget)양을 통해 회심하였는데 그의 이름은 차프만 부인이나 헤이크 부인으로 더불어 바안스테이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부렵 마틴(Henry Martyn)이 인도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시리아로 횡단하게 되자 온 영국인들은 이들 나라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었는데, 그로브스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829년 치과의사로 개업하고 있던 그로브스는 친구에게서 빌린 욧트를 타고 피터스버그를 거쳐 바그다드로 향하였다. 

이 배에는 그들 부부와 두 아들과 그의 누이인 루디아(Lydia), 테일러(Taylor)양과 그리고 아릴랜드 태생의 청년 바티(Mr. Barthie)가 타고 있었다.  이들의 선교여정에는 강도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으로 가득차 있었고, 바그다드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위치한 도시로서 에덴동산의 추정지 임에도 불구하고 메마른 땅, 찌는 듯한  더위, 살인과 싸움과 강도질을 일삼는 회교도들에게 시달렸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그의 내조자인 메리 그로브스를 전염병으로 인해 잃게 되었다.

3년 후, 그는 바그다드에서 인도로 갔다.  크로닌(Dr. Cronin), 파넬(John Parnell), 뉴만(Francis W. Newman), 코튼(Authur T. Cotton)이 인도 선교에 동참하였다.

 

그로브스는 인도 각지를 돌아본 후에 영국으로 돌아와 바안스 테이플에서 보우덴 부인(Bowden)과 비어 부인(Beer)을 데리고 갔는데, 이들이 고다바리(Godavari)에 정착하게 되었다. 

20년 동안이나 외롭게 일하던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힐리스(Heelis), 멕크레이(M'cray), 마일스(Miles), 테일러 자매(Miss Taylor) 등을 보내셔서 일이 확장되어갔다.

선교 초기에는 원주민 아룰라판(J. C. Aroolapan)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어 교회가 형성되었다. 

신병으로 귀국하여 1853년 5월, 브리스톨에서 영면하기까지 그는 인도선교 정착에 혼신의 정열을 다 기울였다.

동년 7월에 선교보고(The Missionary Reporter)가 처음으로 발행되었고, 후에 선교의 메아리 (The Missionary Echo), 봉사의 메아리(Echoes of service)로 발전해 가면서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지의 선교 정보를 대변해 주고 있다.

 

- 앞서간 형제들에서(엠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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