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선진들

조지 뮐러 (George Muller1806-1898)

바위섬 0 736 2017.02.0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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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뮐러
(George Muller1806-1898)

 

프러시아에서 출생한 그는 경건치 못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으나 돌발적으로 회심한 후에 그의 생애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했다.  그는 유대인에게 전도하려는 열망이 있었고, 히브리어 공부에 진보를 나타내어 적성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런던에 있는 유대인 협회에서 일하려 했으나 신앙 양심상 포기했다.

  그는 데보샤이어에 잠시 머물면서 주님의 쓰임을 받았고, 그곳에서 크레이크(Henry Craik)를 만나 1866년에 그와 사별하기까지 30여년간 변함없는 우애와 동역으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능가했다.

  크레이크는 그의 아버지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학교(Parochial School)를 거쳐 성 안드레 대학교(ST. Andrew University)에서 수학했으며, 헬라어 ·라틴어에 능통했고, 성마리아 대학에서도 학문을 닦은 지성 청년이었으며, 1826년에 구원을 받게 되면서 그의 학우들에게 열렬하게 전도했다.  그 후 에딘버러로 옮겨 그로브스의 가정에 2년간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경건의 훈련에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이 무렵 뮐러와 만나게 되어 동역을 시작하게 되자 풍성한 열매를 주셨고, 1832년 이들 두사람과 다른 형제, 그리고 네 자매 모두 7사람이 베데스다 교회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평생 동역을 하게 되었다.  이미 그들은 기성교회의 전통에서 탈피하여 유아세례 ·성직자 제도 ·국가에서 받는 급료 등을 폐지했고 모든 성도들이 교파와 계급을 초월하여 성찬에 참여케 했다.

 

  브리스톨에서 주님의 축복을 체험하는 어간에 그는 고아들을 돌보고자 하는 심령의 매임을 받았다.  1834년에 소규모로 시작된 이 사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확장되어갔다.  그는 시작부터 이 일에 필요한 어떠한 도움도 사람에게 알리거나 요청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께 요청하기로 원칙을 세웠다.  이로써 하나님은 예나 이제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 고아원 사업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대로(어떤 경우에도 빚을 지지 않았고)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아쉴리 다운(Ashly down)에 마련했고, 2차, 3차, 4차, 5차로 시설은 계속 확장되어 마침내 2,050명의 고아들과 직원이 거처할 수 있도록 확장되었고, 그들의 필요를 적시에 채워주시는 체험 속에 65년간 경영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러한 주님의 도우심은 때로 장기간에 걸쳐 응답되기도 했지만 가끔 그 날, 그때에 공급되기도 했다.  언젠가 어느 형제가 이 고아원을 들러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  그 날 아침 식사 후에 그 형제는 뮐러의 손에 봉투를 쥐어주고 떠나갔다.  실은 그 날 점심을 준비할 돈이 한푼도 없었던 때에 주님이 공급하셨던 것이다. 

 

  언젠가 고아원에는 아침 식사를 준비할 돈이 없었다.  뮐러는 다만 무릎을 끓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때아닌 소낙비로 쏟아지는 이른 아침에 음식을 가득 실은 마차가 고아원으로 들어섰다.  인근 공장에서 종업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계획하였으나 폭우로 불가능하게 되자 고아들에게 보내주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65년간, 순간순간 주님의 공급을 체험했던 기록이 "The Lord's dealings with George Muller"에 한권으로 편집 수록되어 있다.

 

  그의 만년(1874~1892)에는 그의 사위인 라이트(James Wright)에게 고아원 사업을 인계하고 영국은 물론 유럽전역과 미국, 카나다, 호주, 인도, 중국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의 신앙과 사랑을 격려했다.

  그는 교파를 초월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했고, 그를 초청하는 어느 곳에나 주님의 은혜를 끼쳤다.  그의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했으며,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에 의지했다.

  1898년 3월 10일 이른 아침에 그는 지상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만왕의 왕을 뵙기 위해 급히 떠났다.  전날 저녁에도 일상 업무에 분주했고 평상시와 같이 기도회에 참석하였던 그가 눈깜박할 사이에 아무런 고통도 모른 채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 앞서간 형제들에서(엠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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